2022년 3월 10일 목요일

우리의 미래는?

우리는 어떠한 세상에 살고자 하는가? 가까운 미래에 세상이 어떤 모습을 갖추기를 바라는지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혹 이런 대답이 나올 수 있겠다. 손흥민보다 더 뛰어난 축구선수, 조성진 보다 더 멋진 연주를 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 BTS의 빌보드 기록을 갱신하고 그걸 훌쩍 넘어서는 뮤지션,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국인 소설가, 시인을 보유하고, 3-4년에 한 번씩은 과학분야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한국 사회를 말할 수도 있겠다. 삼성이나 현대를 뛰어 넘는 세계 수위권 기업들이 등장하고, 그 기업의 CEO는 제프 베조프나 마크 저커버그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시야를 넓혀 더 폭넓은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선두 주자들이 즐비한 사회를 꿈꿀 수 있겠다. 매일 클릭해 들어간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런 승전보들이 연일 소개되어 우리 사회의 높은 수준을 가늠케해줄 것이다. 학생들은 이러한 모습에 더욱 분발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여념이 없고, 학교는 그러한 최고들을 배출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에 최선을 다한다. 국가는 여기에 맞추어 정책을 가다듬고, 그에 조응하는 예산을 편성한다. 
어디 하나 막힘 없이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물 흐르듯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 사회는 대다수의 우리가 바라는 미래라 할 수 있다. 사회 모든 곳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고, 경쟁의 순기능으로 모든 분야의 맨 앞에 노력의 열매를 거둔 누군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경쟁의 결과에 맞추어 공정하게 보상이 주어진다. 이러한 사회에서라면 일론 머스크처럼 365조의 재산을 지녀도 문제 없다. 룰에 따라 경쟁했고 경쟁의 결과에 따라 보상을 받았으니 잘못된게 없다. 다만  나 역시 좀 더 노력해서 경쟁에서 이기고 더 많은 보상을 받으면 그만이다. 그 역시 공정하니 떳떳하게 누리는 보상이 될 것이다. 능력이란게 일부는 타고난 것일테고 그 나머지는 각자의 노력을 통해 길러진 것이다. 타고난 능력은 숙명에 해당하는 것이고, 길러진 능력은 노력의 산물이므로 모두 정당한 각자의 소유라 할 수 있다. 능력의 크고 작음에 대해 토를 다는 것은 그저 능력이 부족한 자들의 불평에 불과한 것이다. 무능은 자신의 책임이고 능력의 우월함은 철저한 자기관리의 산물이다. 이처럼 정당하게 갖춰진 능력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경쟁은 사회가 계속 진보하기 위해 필요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사회는 구성원들의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요소 요소 질적으로 양적으로 성장한다. 이러한 성장은 또한 정당하게 이뤄지는 경쟁에 대한 보상을 한층 키워서 다시 경쟁을 촉진하는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경쟁 지상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절차를 공정하게 뒤 바꾸어 놓으면 이러한 사회의 미래상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인가? 모든 체제와 절차가 완벽하게 공정하기만 하다면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누구나 1/n의 확률로 일론 머스크가 될 수 있으니 모두 거리낌 없는 꿈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사회는 자연의 섭리를 고스란히 존중하고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사회일까? 모든 분야에서 선택되고 집중되는 사람들과 배제되고 도태되는 사람들이 쉼 없이 발생하는 일은 이러한 자연스러움의 필연적인 귀결일까? 선택되고 집중되는 사람들은 순전히 책임을 다하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이니 고도의 자긍심과 독점적인 보상이 주는 삶의 혜택들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되는 것일까? 배제되고 도태된 사람들은 모든 룰이 공정함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자신의 노력 부족과 그로 기인한 무능함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니 주어진 결과에 불평 없이 승복하는 것이 마땅한 것일까? 이 질문들에 대해 그렇다고 답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크게 고민할 필요 없이 이러한 사회를 꿈꾸고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만일 이 질문들에 대해 뭔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면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 대다수가 의심의 여지 없이 꿈꾸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