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런 흐름에 대한 비판이 18세기 후반 제시되었다. 18세기 후반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schöne Wissenschaft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칸트는 미에 대한 과학은 없고 미에 대한 문화만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Kant, Kritik 1959, p. 157.) 그는 과학을 엄밀히 정의된 방법을 통해 얻을 수 있어서 그 결과 고도의 확실성을 지닐 수 있는 지식에 한정지웠다. 그는 진정한 과학을 논쟁의 여지가 없는 확실성을 지닌 것으로 개념지웠다 (Kant, Immanuel: Gesammelte Schriften, Berlin 1911, vol. 4: Metaphysische Anfangsgründe der Naturwissenschaft., p. 467).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schöne Wissenschaft을 주관적 취향과 관련된 지식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칸트가 18세기 후반 19세기 초반 독일 철학계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였기에 19세기 초반부터 schöne Wissenschaft는 급격한 쇠퇴를 맞이하게 된다. 칸트의 영향을 받은 철학자 Wilhelm Traugott Krug는 그의 저서 "취향(taste) 또는 미학(Geschmackslehre oder Ästhetik)"에서 과학은 미학적 즐거움을 소개하거나 만들어내는 것과는 무관하며, 오로지 진리의 발굴에 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과학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의 거대한 변화는 교육에 대한 생각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18세기말까지 독일 대학 교육은 schöne Wissenschaft에 바탕을 두고 고전 문학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에 집중하였다. 하지만 과학에 대학 철학적 성찰이 몰고 온 변화의 바람으로 말미암아 당시 교육을 이끈 사람들은 고전 교육에 보다 엄밀한 방법론을 적용하여 칸트의 과학 해석에 좀 더 부합하는 교육을 기획한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Friedrich August Wolf(1759-1824)라는 문헌학자이다.
2019년 4월 28일 일요일
교육과 연구2-schöne Wissenschaften과 교육-헤르더의 교육관
우선 훔볼트가 과학의 총화를 바탕으로 연구 중심 대학을 이끌게 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자.
19세기 초반까지 "schöne Wissenschaften" ("fine sciences")라는 제한된 범위의 과학만이 교육(Bildung)의 대상이었다. "schöne Wissenschaften" ("fine sciences")는 아름다움을 해석하고 판별하고 생활에 적용하는 과학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신학, 법학을 다루는 과학이나 수학, 물리학 등을 다루는 과학과 구분되는 제한된 영역의 과학이었다. 회화, 건축, 시, 음악, 무용 등이 "schöne Wissenschaften" ("fine sciences")과 관련된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교육에서 주로 다뤄진 schöne Wissenschaften는 문학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시학, 웅변수사학(oratory), 역사문헌학, 고전 문헌 이해에 요구되는 철학 등이 여기에 속했다. 또한 그리스 로마 고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리학, 역사학, 신화학 등 역시 교육의 영역 내에 있었다. 이들은 모두 schöne Wissenschaften이거나 이를 학습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식들이었다. schöne Wissenschaften가 교육의 대상이 되었던 주된 이유는 18세기에 활약했던 Johann Gottfried Herder에 의해 어느 정도 설명된다. 그는 "schöne Wissenschaften"에서 다루는 다양한 감각(Sensory faculties)을 통한 구체적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미에 대한 이해가 "höhere Wissenschaften"과 같이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과학의 바탕이 된다고 생각했다 (Herder, Johann Gottfried: Sämmtliche Werke, ed. by Bernhard Suphan, Berlin 1893, vol. 9: Über den Einfluss der schönen in die höheren Wissenschaften, pp. 289–306., p. 296.). 그리고 더 나아가 미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사물의 완전함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고, 이것이 학생들의 행동과 사고에 영향을 미치면 진리와 선함에 대한 이해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Herder, Johann Gottfried: Schulreden, ed. by A. Reble, Bad Heilbrunn 1962., pp. 73f). 즉 그는 미에 대한 교육을 고전적인 교육의 덕목인 진, 선, 미에 대한 교육의 출발점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 대한 비판이 18세기 후반 제시되었다.
19세기 초반까지 "schöne Wissenschaften" ("fine sciences")라는 제한된 범위의 과학만이 교육(Bildung)의 대상이었다. "schöne Wissenschaften" ("fine sciences")는 아름다움을 해석하고 판별하고 생활에 적용하는 과학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신학, 법학을 다루는 과학이나 수학, 물리학 등을 다루는 과학과 구분되는 제한된 영역의 과학이었다. 회화, 건축, 시, 음악, 무용 등이 "schöne Wissenschaften" ("fine sciences")과 관련된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교육에서 주로 다뤄진 schöne Wissenschaften는 문학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시학, 웅변수사학(oratory), 역사문헌학, 고전 문헌 이해에 요구되는 철학 등이 여기에 속했다. 또한 그리스 로마 고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리학, 역사학, 신화학 등 역시 교육의 영역 내에 있었다. 이들은 모두 schöne Wissenschaften이거나 이를 학습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식들이었다. schöne Wissenschaften가 교육의 대상이 되었던 주된 이유는 18세기에 활약했던 Johann Gottfried Herder에 의해 어느 정도 설명된다. 그는 "schöne Wissenschaften"에서 다루는 다양한 감각(Sensory faculties)을 통한 구체적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미에 대한 이해가 "höhere Wissenschaften"과 같이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과학의 바탕이 된다고 생각했다 (Herder, Johann Gottfried: Sämmtliche Werke, ed. by Bernhard Suphan, Berlin 1893, vol. 9: Über den Einfluss der schönen in die höheren Wissenschaften, pp. 289–306., p. 296.). 그리고 더 나아가 미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사물의 완전함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고, 이것이 학생들의 행동과 사고에 영향을 미치면 진리와 선함에 대한 이해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Herder, Johann Gottfried: Schulreden, ed. by A. Reble, Bad Heilbrunn 1962., pp. 73f). 즉 그는 미에 대한 교육을 고전적인 교육의 덕목인 진, 선, 미에 대한 교육의 출발점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 대한 비판이 18세기 후반 제시되었다.
2019년 4월 25일 목요일
교육과 연구 1
18세기말 19세기 초 활약했던 빌헬름 폰 훔볼트는 과학의 총화("Einheit der Wissenschaft")로 표현되는 과학관을 지녔다. Bas Van Bommel(Between "Bildung" and "Wissenschaft" the 19th-Century German Ideal of Scientific Education: Europäische Geschichte Online; http://ieg-ego.eu/en/threads/models-and-stereotypes/germanophilia-and-germanophobia/bas-van-bommel-between-bildung-and-wissenschaft-the-19th-century-german-ideal-of-scientific-education#InsertNoteID_11_marker12)은 훔볼트의 이러한 관점이 독일 대학의 사명을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훔볼트는 과학 연구를 교육이 최상의 상태로 도달하도록 이끄는 핵심적 요소라 주장했다. 훔볼트는 다음 세가지 원리에 근거해서 과학과 교육이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그는 그와 동시대의 철학자들(피히테, 셸링, 헤겔, 슐라이어마허)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식은 내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총화("Einheit der Wissenschaft")를 이룰때에서야 각 지식의 자리가 어디인지 제대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둘째, 과학의 총화는 쉼없는 과정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과정은 아직 완전히 발견되지 않은 무언가, 그리고 완전히 밝혀질 수 없는 무언가를 쉼없이 탐구하는 과정("noch nicht ganz Gefundenes und nie ganz Aufzufindendes")이라 생각했다. 이런 까닭에 과학 연구는 대학에서 이뤄지는 끊임없는 실험(academic practice)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 그는 과학 연구를 통해 인간 지식을 서로 조화롭게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인간의 지성은 그에 비례하여 조화로운 총체성을 획득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얻어진 성과를 참된 교양(wahre Bildung)이라 여겼다. 이러한 원리로부터 그는 과학의 지향점을 교육이 집중해야 할 대목 즉 가장 보편적 인간("das höchst allgemein Menschliche")의 추구로 여겼다. (Van Bommel, ibid)
보통 연구 중심대학의 기원을 거론할 때 꼭 등장하는 것이 훔볼트의 관점에 의거해 만들어진 독일 대학들이다. 그로부터 200여년이 흐른 지금 연구 중심대학에 대해 살펴보는 첫 단추로 훔볼트의 생각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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