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8일 수요일

생명 소묘-물

하늘 땅
내 몸을 거쳐
나무, 벌레를 빠져 나와
산, 들, 바다로 퍼지는 먼 길.

멀리서

내게로 왔던 길이
다시
네게로 간다.

철새와 행인,
햇살과 내 아이가
이어져 있다면...

바로 그 때문에 
모든 방황은 길을 만들고
너는 늘 그 위에 있다.

모래성 같은 세상의 형상
땅 위를 거니는 구름들.
존재는 멀리서 날아 온 부고 같은 것.


세상에 존재하는 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깨우치기 위해 사실 고도의 생물학적 지식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수행을 하는 스님들이나, 강가나 바닷가에서 오래도록 살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물에 대한 깊은 통찰을 던지는 경우를 가끔 본다. 물은 웅덩이, 도랑, 개울, 하천, 강, 호수, 바다를 메우고 흐르는 물질임과 동시에 온 대지 위 모든 생명체속에서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는 물질이며, 지구라는 행성의 내부와 표면과 대기 중에 미만하여 기후와 바람과 자연 활동들을 매개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물은 생명체와 생명체 사이를, 생명체와 비생명체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서로를 관계짓도록 하며, 자연계 더 나아가 행성 전체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여 항상성을 갖도록 한다.

베토벤 소나타 32번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라는 소설에 나오는 대목이다. 글의 주인공 아드리안과 소설의 화자 자이트블룸은 어렸을 때 카이저스아셰른이라는 곳에서 김나지움을 다닌다. 아드리안의 숙부는 그 동네에서 유명한 악기제조상이어서 음악가들과 교류가 깊었다. 그 중 하나인 벤델 크레추마허는 미국태생 음악가로서 마침 그 고장에서 작곡과 연주 활동을 하는 가운데 아드리안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크레추마허는 동네 사람들을 위해 복지회관에서 몇차례 열정적인 강연을 하는데 그 중 한 강연의 주제가 "왜 베토벤은 소나타 32번에 3악장을 작곡하지 않았나?"였다. 필시 아주 소수를 제외하곤 관심을 두기 어려운 주제여서 몇 안되는 청중을 대상으로 이뤄진 열강이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3악장 구조에서는 1악장과 조응되는 3악장이 등장하여 고조된 2악장의 내용을 갈무리한다. 일종의 순환구조인 셈이다. 집으로 돌아오듯 곡이 갈무리된다 할 수 있다. 사건이 벌어지고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고 해도 초기의 모습을 반복하거나 그것과 대응되거나 대칭이 되는 형태로 일이 마무리된다. 삶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갈무리는 부담없이 내일을 맞고자 하는 바램의 산물이다. 일상의 구조이자 규칙이다. 이를 어기는 것은 일탈이거나 무리수가 된다. 어떻게 보면 자기관리이고 잘 통제된 절제미를 보이는 대목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베토벤 소나타 32번의 경우는 이러한 규칙을 따르지 않고 있다. 크레추마허의 해석에 따르자면 베토벤은 2악장의 주제를 점차 발전시켜 결국 그것이 밟고 있는 대지를 박차고 다른 차원 또는 피안이나 추상의 세계로 나아간다.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다른 세계로 도약하는 것이다. 이 곡이 작곡된 1820년경 베토벤은 주지하듯 청력을 거의 상실했다. 그는 그러한 가운데서도 자신은 작곡을 할 수 있는 정신상태 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이 곡을 작곡했다. 그는 감각의 세계를 잃어버린 대신 그 잃어버린 크기 만큼 더 넓어진 성찰의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감각계가 구축하는 상대성의 세계에 고립되지 않고 절대성의 세계로 나아간 것이다. 이러한 도약은 3악장의 작곡을 불가능하게 했다. 아이러니해보이지만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돌아오지 못할 길이다. 피안으로의 도약이 비장하고, 피안의 틈새를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가 섬뜩한 까닭은 필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도약 역시 '거대한 순환'의 일부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안다 해도 섬뜩하고 비장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늘 그렇듯이 여기에 비밀이 있는 것 같다. 생명이 지니는 긴장의 비밀.
이 곡을 노년의 끌라우디오 아라우와 젊디 젊은 손열음의 연주로 비교하며 듣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끌라우디오 아라우
손열음

2017년 6월 22일 목요일

생명 소묘-세상을 덮다.

행색이 초라한 세상.
얼마의 죽음을 잇대어야 삶이 다 기워질까?
한 땀 삶이 죽음의 핑계였다가
한 땀 죽음이 삶의 이유인 이 곳.
누더기처럼 기워진 생명이
차가운 새벽
세상을 덮고 있다.

세상의 길들은
삶과 죽음의 헤진 틈새.
모든 여정은 경계에 있다.
가고 오는 걸음은 같다.
한 겹씩 벗겨지는 생명의 표피.
걸음마다 가루되어 대기를 채운다.

생명은 한결 같고, 늘 다르다.
멈추는 곳마다 한 땀 기우는
솜씨
온갖 무늬로 뒤덮힌 여기는
당신과 나의 숨결이 합쳐지는 곳.

떠남과 돌아옴
소멸과 생성
인간과 인간과 그 주위를
쉼 없이 잇대어 만드는 풍경.
공적인 너무나 공적인 생명





















2017년 6월 13일 화요일

BT vs Biology

벤쳐 캐피탈 얘기를 하다가 문득 든 생각이다. 눈먼 돈이란 얘기를 가끔하게 되는데 바이오 벤쳐로 몰려든 돈들 역시 그 범주에 속할 듯 하다. 아니 속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범주의 전형적인 예가 아닐까 생각된다. 분자 신약이라는 분야에서 대략 10년 정도 실험을 했다. 그것도 세계적인 선두 그룹의 일원으로 그 실험들을 진행했다. 분자 신약은 유전 생명 공학이 의료 시장에 접근하는 첩경쯤으로 여겨져 왔다. 아니 아직도 그러한 믿음은 많은 제약회사나 투자자들로 하여금 투자와 개발의 의욕을 담금질하도록 만드는 동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생물학의 산물이 얼마나 큰 시장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럴만한 식견 역시 없다. 다만 생물학을 비롯한 학문의 값어치가 그것의 시장친화성에 의해 저울질되는 작금의 현실을 향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싶을 따름이다. 물론 분자 신약은 많은 연구를 통해 현존하는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수년 내는 아니겠지만 언젠가 질환치료제 중 중요한 일부가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생물학을 향한 사람들의 오해로부터 기원한다.


보통 사람들이 IT, BT, NT할 때 BT는 Biotechnology의 약어일 것이다. 이는 Biology가 기술로 이전되는 것을 그 지향점으로 이뤄지는 연구활동을 총칭하기 위해 등장한 다분히 작위적 개념어이다. 우리는 BT와 Biology라는 두 영역을 앞에 두고 여러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두 영역은 어떻게 구분되어지는 것인가?
두 영역은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고 있을까?
두 영역이 발전하고 진보해 나가는 경로는 서로 일치할까?
이러한 질문들을 두고 답하고자 할 때 상당히 막연해지고 혼란스러워지는 까닭은 BT라는 개념이 지니고 있는 작위성으로부터 연원하는 것 같다. 어떤 학문 자체와 그 학문의 응용 가능성이라는 범주는 서로 그 층위가 상당히 다르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Biology를 얘기할 때 BT와 혼재된 개념 정도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Biology가 생성, 성장, 변모해가는 고유한 메카니즘이 상당한 정도 무시되거나 왜곡되어진 채 BT라는 개념속에 흡수 통합되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사실 Biology의 상당히 큰 영역은 기술로 이전되기도 힘들뿐더러 따라서 시장 친화적일 수도 없다. 기술 이전을 통한 시장의 확보는 자본주의라는 특수한 사회체계에서 그 의미를 지니게 된 사회현상일 따름이다. 


하지만 Biology라는 학문 자체가 자본주의적일 수는 없다. 물론 'Biology라는 학문 자체'라는 가상의 범주를 설정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 어짜피 모든게 유기적일테고 거기서 학문이 예외일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Biology라는 학문의 대상을 염두에 두고 보면 조금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생물, 동물, 식물등 생명체가 작동하는 원리와 그것들이 서로 맺는 관계. 이러한 것들이 Biology의 연구 대상이라면 사회체계나 이념 등과 상당히 독립적인 것들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물론 Marx가 자본론에서 언급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 중 하나인 물신주의(fetishism)는 이처럼 독립적인 대상들조차 치밀하게 자기 내부로 끌어들이고 연관시켜낸다. 생명현상들 가운데 돈이 될만한 것들만 눈에 보이게 되는 건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적 속성이 작용한 결과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는 사람의 시야의 문제일 따름이다. 생명현상이라는 대상은 그것을 보는 사람의 관점과 이해관계와는 무관하게 작동하고 변모한다. 바로 여기에 BT와 Biology사이의 괴리가 있는 것이다.

돈이 있는 사람들이 돈이 되는 일들을 만들고, 돈이 될만한 일들을 하여 돈을 벌고 있다. 세상을 설명하는 아주 간명한 어구일 것 같다. 그리고 이는 지금 실험을 하는 연구실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다. 실험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또 한편으로 돈이 있으려면 돈이 될만한 실험을 해야 한다. 따라서 돈이 될만한 실험을 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더 많은 돈이 될만한 실험을 계획하고 진행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돈이 될만한 실험'이 곧 '해당 사회나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성취하는 실험'이거나 '학문의 성장에 크게 이바지하는 실험'이라는 보장이 없다. 아니 많은 경우 그 둘은 서로 상충하거나 배제하기 일쑤이다. 

바로 여기서 생물학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2학기에 열릴 '생체분자론'의 첫 시간은 에른스트 마이어의 'This is biology'로 시작한다. 생물학의 역사와 그 체계를 세밀하게 고찰하다 보면 '자연철학'으로서의 생물학과 '응용과학'으로서의 생물학이 어떤 계통도를 가지고 발생 변모되어 왔는지 윤곽을 잡을 수 있다. 이러한 탐색의 도처에서 참 많은 질문들이 불쑥 불쑥 튀어 나온다. '생명'을 이해하는 환원주의적 접근과 유기체주의적 접근 사이에는 어떤 긴장이 존재하는지, 생명을 인간이라는 좁은 시스템에서 볼 때와 자연이라는 보다 큰 시스템에서 볼 때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그 질문 하나 하나가 굵직하다. 답이 뚜렷할 수는 없겠지만 여기가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7년 6월 12일 월요일

생명에 대한 짧은 글1

돋아난 새 살점 아래로
생명을
본다.

갈라진 상처
거기 닿지 않는 아픔 하나 있어
집요하게 허공에 매달리는 빈손들의 아우성.

먼 길 돌고 돌아
달려오는 실핏줄.

바람이 가는 길은 들풀이 알고
겨울이 가는 길은 속 깊은 뿌리들이 알 듯
생명이 가는 길은 무릇 세상의
모든 상처가 알고 있다.

거실에 놓인 화초가
바람을 알지 못하고,
겨울을 껴안지 못하듯
지금 아프지 않은 것들은
생명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늘 그렇듯 꽃은 상처 위에서만 피고,
대지의 숨결은 온 밤 내내 꽃을 기다리며
상처를 한시도 떠나지 않는다.

긴 세월 지나
아문 생채기.
먼 길 떠난 모든 것들이
들려주는 그리움의 노래.
아! 우리 안의 상처여!


항상성.
생명 활동의 시점이자 종점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의 고유한 속성이다.
모든 생명체는 자기 자신이라는 하나의 개체가 이루고 있는 계와 그를 둘러싼 환경이 이루고 있는 계의 상호 작용을 통해 자신의 생명 현상을 구현해낸다. 이를 '살아 간다'라 표현한다. 삶은 우리가 알거나 알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지는, 이러한 상호 작용들의 총체와 같은 의미이다. 비를 맞거나, 햇볕을 쬐거나, 공기를 들이 마시거나, 물과 음식을 섭취하거나, 만상을 바라 보고 듣고 만지며 느끼거나, 산화되는 땔감으로부터 온기를 얻거나, 중력에 힘 입어 대지와 들판과 산 위를 걷거나, 이 모든 활동은 우리가 의식하건 않하건 간에 우리의 몸이라는 계가 우리 주위의 수많은 다른 계들과 벌이는 상호 작용이다.

상처는 우리 각자 개체를 이루는 계가 잠시 그 외부의 계에 문을 열었을 때 벌어지는 우리 내부의 부산한 활동과 작용들의 평형이 이뤄낸 산물이다. 상처는 평온한 시기에 잠시 잊었던 것들을 떠 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나 아닌 것들과 나 사이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계기를 상처가 제공하는 것이다. 생명이라면 스스로 던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답하는 방식으로 개체는 부산한 활동을 거듭한 끝에 자신이라는 계를 다시 유지한 채 굳은 살 한점을 남기게 된다. 상처.

누군가 굶주리거나, 절망하고, 절규하다가 혹 스스로 자신의 삶을 끝 마치거나, 뜻하지 않게 죽어 갈 때, 즉 우리 안의 상처들이 여기 저기서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질 때, 이를 회피한다면 이는 살아있는 계가 아니다. 길거리에 죽어 있는 고양이나 두더지의 시체처럼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개체는 이젠 자신이라는 계를 포기하고 외부와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 안의 상처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는다. 그리고 작용하길 요구한다. 살아 있다면 우리는 너무도 당연히 응답해야 한다. 그처럼 소중한 질문들을 던져 준 우리 안의 상처들에 고마와하며..

아주 오래 전 허세욱 씨가 분신했을 때였다. 아니 그 전 아이를 보듬고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 내린 어느 젊은 엄마의 얘기를 들었을 때일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누군가 고공 크레인에서 뛰어 내렸을 때, 아니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곡기를 끊은 스님의 기사를 접했을 때일지도 모르겠다. 쉼 없이 던져지는 질문들. 그리고 이에 답할 줄 모르고 앞으로만 내지르는 죽어가는 사회. 상처를 무시하는 건 생명이 아니다. 생명이라면 스스로 던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질문들이 상처를 통해 우리 앞에 놓여지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생명 과학을 연구하는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 아주 깊은 아쉬움과 번민에 잠기는 것은 우리 안에 상처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 상처를 접하고 대하는 사회의 모습이 꼭 무엇을 닮았기 때문이다. 상처는 필연이다. 모든 개체가 살아가는 계에서 늘 존재하고 또 그를 치유하며 살아가고 진화하는 것이 생명체의 모습이다. 그러나 상처를 무시하고 더 나아가 상처를 짓밟고서라도 자기 자신의 증식과 성장만을 이루려는 것은, 그리고 그러한 성장을 권장하는 계는 무엇인가? 내 아는 바론 단 하나의 예가 있으니 곧 암세포와 그 조직이다. 암세포는 한번 자리를 잡으면 끊임 없이 성장한다. 벌써 70여년 전에 자궁암에 걸려 죽은 한 여인의 종양 세포는 지금도 세계 곳곳 실험실에서 무럭 무럭 잘 자라고 있다. 암세포로 이뤄진 조직은 그것이 몸 담고 있는 생명체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 생명체가 아무리 큰 상처를 입었다 한들 당연히 관심이 없다. 그저 계속 자기 분열하고 성장하는 것만이 관심사이다. 그리고 무척 이 임무를 잘 수행한다. 그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생명은 항상성을 잃고 종결되고야 만다.

살아 있다면 상처가 던지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필경 어떤 질문이기 쉽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를 에워싸고 있는 뭍 개체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또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
그 답을 기다리는 질문들이 오늘도 여기 저기서 던져지고 있다.
비명처럼,
절규처럼,
외침처럼..

2017년 6월 11일 일요일

밤에

시간이 흐르고
멀리서 기차가 오고 있다.
땅 밑으로 물이 흐르듯
멀리서 달이 지나가고
바람은 내 곁으로
길 하나 내고 등을 돌린 채 달려간다.

밤이 잠시 주저앉아
길가를 응시한다.
가로수 속으로 숨어든 햇살의 기억들이
대치중인 전투원처럼
밤하늘을 경계한다.

광장 가득 불빛 
만년의 인신 공양이
한 시간의 불빛에 담겨 출렁거리다가
빈 거리에 물기로 스미고 있다.
멎지 않는 파도처럼 크고 작은 욕망들을
거두어 땅속으로 다시 스민다.

지붕 아래 사람들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다
깊은 잠에 들었나 보다.
늘 그렇듯 어딘가로 돌아가는 꿈.
저마다 굶주린 채 쫒기는 형상으로
출구 없는 모퉁이에서 잠꼬대처럼
작은 구멍을 파고 있겠지.

어김없이
시간이 흐르고
부대끼는
생명들의 울음소리가
대기에 안개처럼 눅눅하게 스며있는
어느 밤.
문득 깨닫는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세상.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낮에 잃어 버렸던 시간을 밤이 되면 되찾게 된다.
가만히 빈 거리에 서서
떠 있는 달을 응시하다가
불꺼진 창들을  응시하다가
내 옆에 서 있는 가로수들을 응시하다가
문득 듣게 된 소리
부산한 생명들의 잠꼬대.
한시도 멈춘 채로 고정되어 있는게 없다.
낮을 움직이는 힘들은 이렇듯 밤에 만들어진다.

Hahn공항에 눈이 내리네

안식을 찾아
먼 길 달려 온
하얀 영혼들.
검은 하늘
거친 바람에
시달리다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제 모습을 잃고
서로 서로 
섞이고 있다.

자화상

밤하늘이
유리창
너머로
나를 
바라본다.

어떤 
사내 하나가
창틀에
간신히
걸려 있다.

나는 자꾸
그 사내를 외면하고
창너머
하늘에 핀
별무리만 바라 본다.

그 사내는
지금
무얼
보고 있을까?

창백한 얼굴
창틀에
손을 내민채
방안을 기웃거리던
낯익은 사내.

나는 
지금
그를 외면한채
먼 하늘 바라보며
밤을 지새고 있다.

리용가는 길에

늘 
다급한 
마음은
무엇을 
담기에는 
너무
빨리 
움직이고 있다.

Strasbourg,
Selestat,
Colmar,
Mulhouse,
Belfort,
Besançon,
Lons le Saunier,
Lyon Part Dieu

기차는
안개 낀 
선로를 따라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내달리던
마음 한자락이
좌석에 걸쳐 앉은채
멀리 창밖을 내다 본다.

구름이 흐르고
강물 또한
흘러 가고 있다.

잠시 내려
푸른 풀밭 위에 
앉고 싶다.
뚝방 위나 다리여도
좋고
산자락
나지막한 어느 집 마당이어도 
좋다.

바람이 불고
새가 나는 
창밖을 
바라보는
마음 한자락

달리는 기차 안에서
잠시 멈춰 섰다.

저멀리 플랫폼
다시 내달릴 채비를 하며
굳게 닫힌 기차 안에서
잠시 멈춰서 있다.

쟈브리켄 숲길

낙엽처럼
말라 버린
머릿속 기억들
얼마를 
파헤치고
뒤적여야
그 안에서
꽃 같은 
추억을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겨울을 견디는
꽃이 어디 있을려고
겨우내
어디쯤
꼭 꼭
숨겨 놓고 있다가
봄이 오면
꽃이 피듯
내 속 어딘가에서
자라날
추억의 잔뿌리들.

지금 
바람 불고
건조한 
대지 위로
흩어져 가는 
메마른 
기억의 가루들.
가면 어딜 갈려고....
다
내 안에
있던 것들인데
싶어
겨울로 
가는
길가의 초입에
잠시 서
가을 하늘을
본다.

가을을 지나며

수확하느니 일보다
지고 사라져가는
것들만
떠오르는 까닭은...

세상이 다
그러하듯
이제
들판이 우리를 
떠나고
온갖 열매 있는 것들과
추수를 기다리던 것들이
점점
주인을 잃고 있음이리라.

나의 가을엔
낙엽이 온 언덕을 덮고
이리저리 부대끼다가
바람이 불면
땅에 섞이거나
어데로 사라져
버리고 마는데

이것이라도
그나마
내가
자연의 섭리안에
있다는 
위안이라면
위안일까보다.

2017년 6월 10일 토요일

오늘을 보는 시인의 눈

종로오가
이슬비 오는 날,
종로5가 서시오판 옆에서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는 군상 속에서 죄 없이
크고 맑기만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
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품고
그 소년의 등허리선 먼 길 떠나온 고구마가
흙 묻은 얼굴들을 맞부비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 있었다.

충청북도 보은 속리산 아니면
전라남도 해남 땅 어촌 말씨였을까.
나는 가로수 하나를 걷다 되돌아섰다.
그러나 노동자의 홍수 속에 묻혀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눈녹이 바람이 부는 질척질척한 겨울 날,
종묘 담을 끼고 돌다가 나는 보았어.
그의 누나였을까.
부은 한쪽 눈의 창녀가 양지 쪽 기대 앉아
속내의 바람으로, 때 묻은 긴 편지를 읽고 있었지.

그리고 언젠가 보았어.
세종로 고층 건물 공사장,
자갈지게 등짐하던 노동자 하나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지.
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
반도의 하늘 높이서 태양이 쏟아지고,
싸늘한 땀방울 뿜어 낸 이마엔 세줄기 강물.
대륙의 섬나라의
그리고 또 오늘은 저 새로운 은행국의
물결이 뒹굴고 있었다.

남은 것은 없었다. 나날이 허물어져 가는 그 나마 토방 한 칸.
봄이면 쑥, 여름이면 나무뿌리, 가을이면 타작마당을 휩쓰는 빈 바람.
변한 것은 없었다.
이조 오백년은 끝나지 않았다.

옛날 같으면 북간도라도 갔지.
기껏해야 버스길 삼 백리 서울로 왔지.
고층건물 침대 속 누워 비료 광고만 뿌리는 그머리 마을,
또 무슨 넉살 꾸미기 위해 짓는지도 모를 빌딩 공사장
도시락 차고 왔지.

이슬비 오는 날.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그 소년의 죄 없이 크고 맑기만한 눈동자엔 밤이 내리고
노동으로 지친 나의 가슴에선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송경동 시인이 신동엽 창작상을 받으며 말한 창작 소감에 신동엽의 '종로오가'라는 시의 한 구절이 담겨 있어 그 시의 전문을 옮겨 보았다. 다시 읽어 보니 놀랍게도 지금까지 이어지는 내용들이 보인다. 아니 핵심은 그대로다. 마치 전태일의 뒤를 김주익이 잇고, 또 그 뒤를 김진숙이 잇는 것 처럼... 정말 보수의 승리를 이보다 더 웅변하는 것이 또 있을까? 아래 내용은 송시인의 수상 소감 전문이다.


칠흑 같은 밤, 맨발로 빗속에서 낯선 주소를 묻는 아이처럼
다섯 달 수배 생활을 마치고 자진해 들어 온 부산서부경찰서 유치장.
첫날, 관식이 무척 맛있어 진짜 이번엔 사는가 보구나 했습니다.
그간 기륭전자, 용산참사 사건 등으로 세 번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나와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이번엔 꼭 몇 개월이라도 살다 나가겠습니다.
근 몇 년 넋이 빠져 살았습니다.
어느 땐 백발이 성성하고 허리가 구부러진 평택 대추리 어르신들 곁이었고,
잠깐 눈을 감았다 떴더니 67일째, 94일째 굶고 있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 곁이었고,
잠깐 다시 눈을 감았다 떴더니 용산4가 다섯 분의 시신 곁이었고,
잠깐 다시 눈을 감았다 떴더니 이번엔 내가 기륭전자공장 앞
포클레인 붐대 위에서 죽겠다고 매달려 있었습니다.
잠깐 다시 눈을 감았다 떴더니 내가 폭우를 맞으며 목발을 짚고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잠깐 다시 눈을 감았다 뜨고 나면,
조금은
편안하고
행복하고
안전한,
사람들의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여 제가 무슨 고민이 깊어 그랬을 거라고 생각지 말아 주십시오.
다만 사는 게 조금 외롭고 쓸쓸해서였을 거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탁발한 시인의 길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한편, 가끔 시인들은 넋이 좀 빠져 저 세상으로도, 이 세상으로도
좀 왔다 갔다 해야 제 맛인 거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하튼, 거의 사회적으로 시인의 탈을 쓴 "전문시위꾼"으로 낙인찍히던 때
구사일생으로 창비와 신동엽 선생님께서 저를 다시 시인으로 호명해 주셨습니다.
오전엔 체포영장 발부 소식을,
그리고 오후엔 수상 소식을 듣게 되는 기가 막힌 날.
오전 체포영장 소식도 덩달아 무슨 큰 상 소식처럼 들리던 날,
오후 수상 소식이 오히려 엄중한 탄압으로 느껴지기도 하던 날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살고, 쓰겠습니다.
신동엽 선생님의 시 <종로5가>에 나오는 칠흑 같은 밤, 맨발로 빗속에서 고구마 한 자루를 메고 낯선 주소를 묻는 한 시골아이처럼,
장총을 곁에 세워두고 어느 바위 곁에 누워 곤히 잠든 한 동학농민군처럼 그렇게,
조금은 높고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2011.11.29)

다시 뒤 돌아 보며

눈 내린
겨울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

사방이 다 길인 것도 같고
사방이 다 길이 아닌 것도 같다.

인가를 찾아
내려온 길목마다
높이 쳐진
울타리.

잠시 지쳐
뒤를 본다.

하얀 눈
그 위로 나 있는
검은 발자국.

내가 걸어 온 흔적마다
햇살
눈부시게 담겨 있다.

그 안에 생명
와락 내게 안긴다.
 
울타리 너머
아이 하나
웃고 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이 거친 바람처럼 밀려와 내 안의 많은 것들을 부숴 버렸다. 마음을 자꾸 부리지 않고 가만히 가라 앉혀 보고자 애를 써 보았지만 가라 앉기 보단 무너져 내렸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 만치 마음이 상해 버렸다. 그러나 생명은 물처럼 흘러 내려 간다. 사랑하는 딸 아이를 바라보며 기운을 낸다. 그러는 가운데 정작 잊어 버린게 있다. 바로 나의 생명 나의 삶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나의 모습은 흔적이다. 지나온 날들의 흔적. 어떤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나의 행위, 생각, 관계, 작고 큰 모든 나의 과거의 행적이 고스란히 지금의 모습을 이루었다. 나와 내 주위의 친구들과 이웃들과 주위의 생물들과 온갖 무생물들이 협력하여 이뤄 놓은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 같은 생각을 이어보면 아버님의 마지막 모습을 이루고 있던 것들의 몇 할이 나로부터 인한 것일까?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일 것이다. 나는 그 몇 할을 통해 아버님을 나와 다르지 않은 존재로 받아 들여 왔던 것이다. 그것이 의식적이었건 무의식적이었건 간에 우리 모두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주위 사람들과 주위 사물들과 나누며 살고 있다. 내가 나를 뒤 돌아 본다는 것은 이처럼 온갖 군데 산재해 있는 나의 모습을 차분히 들여다 본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내 안에 담긴 다른 존재들의 흔적을 차분히 살펴 보고 어루만지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길을 잃는 다는 것의 미덕은 바로 이런데 있는 것이 아닐까? 뒤돌아 볼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잊고 지내온 나 자신을 어루만져 주고 감싸 안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것일게다.

밤하늘

불을 끄면 하늘이 밝습니다.
별 때문인지
달 때문인지
가로등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불을 끄면 하늘이 참 밝습니다.

파아지에 담긴 세상

파도를 미는 손길과
내 얼굴 가죽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힘이
서로 만나
팔씨름을 하면 누가 이길까?

아이가 낙엽을 주워 유모차 뒷 칸에 모으는 동안
바람은 다시 더 많은 잎새를 떨군다.
5분이면 감염에 성공하는 파아지들은
산티아고 운동장에 모인 남루한 군중들처럼
다들 손아귀에 대못 하나씩을 들고 있다.

박테리아 뱃속에 가득 차 있던 모래알갱이들이
파도에 떠밀려 작은 돌덩이로 뭉치는 곳.
아이는 여전히 낙엽을 두 손에 쥐고 엄마의 환심을 사고 있고,
군중은 바리케이트를 짜다 말고 잠시 휴식에 잠겨 있다.

멀리서 날아 온 기러기들의
폐포 속으로 포화되어 녹아드는 세월.
포효하건, 절망하건,
술에 취했건, 낮잠을 자건,
온갖 대사는 쉼 없이 진행되고,
나머지들은 땅속으로 스미던지 아니면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한낮의 공원.
여전히 새가 날고
낙엽이 진다.
파도를 밀던 손길이
파아지의 몸통을 부수었다가
다시 쌓아 올리고
박테리아는 만삭의 몸으로 꿈에 잠긴다.

아이가 건네는 낙엽을
달리던 군중 속 한 사람이 낚아채 산산히 부수었다.
하지만 대수로울게 없다.
링게르 방울 떨어지듯
파도가 밀려오듯
취객이 잠을 자듯
아이가 낙엽을 주워 오듯
군중이 성벽을 깍아 내듯
파아지가 변이하듯
우리는 살아 간다.

우리는 살아 간다.

파도를 미는 손길과
내 얼굴 가죽을 팽팽하게 잡아 당기는 힘이
서로 만나
팔씨름을 하면 누가 이길까?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면
잎새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갈 집이 있어서 좋겠다.

거꾸로 가는 사람들

삼천킬로를 거슬러 태어난 개울로 회귀하는
알래스카의 연어들처럼,
중력을 거스르고
거센 물살을 거스르고
작고 큰 폭포를 거슬러 뛰어넘는
연어들처럼,
우리 주변에도
기어이 사람들 틈을 비집고
거꾸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지류는 지류와 만나
강이 되고
또 강은 다른 강들과 만나
거대한 바다로 뛰어 드는데,
연어는
바다에서 강으로
강에서 지류로 돌아와
어느 한적한 개울에서 알을 낳고
지친 몸뚱아리 일부는 곰에게 먹이로 주고
그 나머지는 제 살던 숲속 나무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준다.
세상 사람들은
너도 나도 패를 짓고
또 세를 불려서
강남이나 미국 같은 막바지로 몰려가는데,
어떤 사람들은
서울을 떠나
어느 산천 양지 바른 곳에
피땀 배인 낱알을 심고
처음 왔던 자연의 품으로 순순히
돌아가고 있다.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은 잠시
뒤로 물리더라도
팔딱거리며 연어가 물살을 거스르는 모습은 왠지
꽉 막힌 내 가슴 한복판에 길을 하나 뚫어준다.
나는 그렇게
기어이 거꾸로 가는 사람들을 보며
연어에게 그랬듯이 고마움에 잠긴다.


김진홍 목사는 가난을 퇴치하기 위해 곧 부를 쟁취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고군분투하다가 신자유주의 흐름의 선봉장이 되어 지금 우리 사회 거대한 흐름의 맨 앞에 선 꼴이 되었다. 거기에 대한 가치판단은 굳이 하지 않겠다. 그럴 값어치가 없기 때문이다. 한때 김목사만큼이나 열렬하게 빈민운동을 하던 또 한사람의 목사가 있다. 바로 허병섭 목사다. 얼마전 뉴스앤조이 기사를 보다가 허병섭 목사의 근황을 접할 수 있었다. 그는 목사였다가 평신도가 되고, 미쟁이였다가 산촌의 필부로 돌아가 남은 여생을 살다가 병을 얻었다. 그가 보여준 일생을 되짚어 보다가 연어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가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의 남은 삶에 주님의 평안과 위로와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2009.5.4)

자꾸 배가 나온다.

만삭인 것처럼 배가 나온다.딱히 모아놓으려 했던 것도 아닌데세상을 살다보니 어쭙잖게 여기저기서 주워 모은 자투리들로뱃속이 가득 찼다.태워보지도 못하고 외려 어디서 축축하게 습기만 끌어 모으고 있는연탄이 있다면,그러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이제 더는 쓰일 요량이 없는 연탄이 있다면,
요즈음 내 꼴이 딱 그렇다.골치 아픈 쓰레기가 되어눅눅한 반지하 습기를 모두 제 것 인양 온 몸으로 빨아 당기고 있는철지난 연탄 마냥그렇게 배가 나온다.제 한 몸 제대로 말릴 주변도 못되면서이젠 좀 덜 먹던지 어디고 몸 부릴 곳을 찾아봐야겠다.그렇지 않고는 사람 도리가 아닌 것 같다.

겨울 안에 봄이 있다.

아픔이 길다 보니 평온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다 잊어 버렸다.
마치 긴 추위 속에 선선한 봄바람의 기억이 낯설어져 버린 것처럼...
오늘도 영하의 날씨에 차창이 꽁꽁 얼어붙었다.
언 차창을 긁어내리며 부르튼 손등을 바라본다.
지난봄이 어떠했는지 가물가물하다.
상처는 나을 겨를도 없이 또 도지고
싸리눈 겨울바람에 움츠리던 몸통은 오그라들 대로 오그라들었다.
이즈음의 상상은 늘 가식적이다.
봄 햇살도 가을 언덕도 다 그림을 본떴다.
내 힘으로 겨울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도 다 부질없다.
작아질 대로 작아진 몸이 말을 한다.
초인은 없다고
세상이 다 돌고 도는 게 아니라면 애초에 모든 게 다 부질없는 것이라고
겨울을 날수록 봄은 멀리 있다.
아픔은 깊어 가고 상처는 덧이 났다.
곧게 온 사람일수록 아픔은 깊고 상처는 심각하다.
겨울은 수렁처럼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고
그럴수록 우리는 겨울 밖을 꿈꾼다.
마치 겨울의 끝이 오면 어떤 문이 있고
그것을 열면 나타날 새로운 봄 세상을 꿈꾼다.
하지만
봄은 언제나 겨울 안에 있다.
대지의 뿌리들과 하늘의 구름들은 잘 알고 있다.
아침 안개와 새들의 노랫소리에 깃든 봄의 눈매를
눈치 빠른 뭇 생명들은 벌써부터 반기고 있다.
새 살이 언제나 상처 속에서 자라나듯
봄 햇살은 겨울의 대지 위에서 자라나고 있다.
길은 늘 에둘러 돌고 돈다.
낮이 밤으로 가고 밤이 낮으로 가듯
그렇게 겨울이 다다르는 곳도 낭떠러지가 아니다.
길을 굽혀 보면 겨울에서 봄이 보인다.
애당초 세상이 다 돌고 도는 게 아니었다면
모든 게 부질없을 따름이다.



진정한 종말론이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천국을 읽고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 역시 일종의 믿음일테지만 '겨울 안에 봄이 있다.'는 사실을 속으로 곱씹다 보면 단지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긴 겨울이다. 움추린 모든 벗들에게 건네고 싶은 시다. 힘내라!! 아자 아자

흙탕물

아스팔트에 고인 물.
아무도 눈길 주지 않지만
사실 얼마나 많은 사연이 담겨 있을까?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몸을 거치고
또 얼마나 많은 싹을 틔웠을까?
얼마나 먼 길을 따라
얼마나 드넓은 산천에 잠겼다가
얼마나 많은 하늘들의 품을 거쳐
오늘 이 잿빛 아스팔트 위에 몸을 뉘였을까?
그저 습관처럼
피해갈 궁리만 하게 되는
아스팔트 위의 흙탕물.
아무도 눈길 주지 않지만
지치지 않고 제 길을 간다.
쉬지 않고 세상을 만들고 있다.


알고 보면 세상에는 흙탕물같은 것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유구한 지구의 역사를 함께 하며 세상을 만들어 갔던 지구의 동료들. 우주의 동료들. 그들이 움직이고 변화되고 어딘가에 멈추는 길고 긴 궤적을, 찰나를 사는 인간들이 제대로 보기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그 궤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그 궤적들이 교차하고 교직하여 만들어 내는 천 조각 보일까 말까 하는 작은 코  하나 위에 두 발을 딛고 살고 있다. 그 작디 작은 존재 하나가 불쑥 비 오는 날 거리를 가로 지르며 바지에 묻은 흙탕물을 가리키며 투덜댄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는 다름아닌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었고 또 내 아이를 있게 해준 지구의 절친한 동료요, 우주의 절친한 벗이라는 것을...

거기 없는 것들. 거기 있는 것들

거기에는 지는 잎새도 없고
나무도 없고
흙도 없고
구름도 없고
하늘도 없으니
가을이 와도
낙엽 하나 날리지 않고
새 한 마리 찾아오지 않는다.
거기에는 여기 저기서 긁어모아진 기름덩이들이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컨테이너에 담겨 있다가
타르처럼 길을 메우고 민들레와 지렁이와 개미들의 숨통을 메우고
오늘을 메우고 내일로 열린 문을 메운다.
거기에는 쓸모없이 날아오르는 새의 날갯짓도 없고
아장거리는 꿈들이 서 있을 대지도 없고
아기들의 잠꼬대도 없고
노인들의 이야기도 없고
바람을 타고 번지던 달콤한 숨결들마저 없으니
봄이 와도꽃 하나 피지 않고
꽃그늘로 모이던 연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거기에는 끝을 벼린 막대들만 우글우글
가장 높은 곳 예리한 막대 끝에는
버캐처럼 마른 핏덩이들만 숨을 쉬고 있다.
거기에는 밤이 와도 아침이 와도
다시 밤이 와도 변하지 않는 풍경.
변하지 않는 표정과 변하지 않는 마음들뿐.
시간이 되도 돌아갈 곳이 없는 영혼들로 붐비는 거기에는
돌아 올 아들을 마중 나온 어머니들만
먼 비탈에 서 있다.


거기란 생명이 소중하지 않은 곳이다. 다 있는 것 같아도 생명이 소중하지 않다면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다. 천하를 다 얻은 것 같아도 그 댓가가 생명이라면 그것은 개꿈보다 못한 현실일 뿐이다. 용산참사를 보며 가장 놀란 것은 과격 시위 때문도 과격 진압 때문도 아니었다. 우리 사회뿐 아니라 어디에서나 그런 일은 존재하고 또 진행되고 있다. 내가 놀란 것은 용산 구청장이나 용산 경찰서장이나 서울 경찰청장이나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법집행과 진압의 선봉에 섰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위의 결과로 인해(그것이 직접적이었건 간접적이었건 간에)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충격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살다보면 개발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면 반대 투쟁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 사람 살아가는 세상에서 무엇이 완전히 옳은 이유를 지니고 이뤄진단 말인가? 그러하기에 충돌도 분쟁도 투쟁도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 모든 것의 기본은 사람이 살기 위해서라는 사실이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 법이 만들어졌고, 사람이 살기 위해서 법 집행도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이 기본 전제가 사라진 사회를 볼 수 있었다. 사람이 죽었어도 떼를 쓴 패거리들이 사회 안녕을 해친 모습을 성토하고, 사람이 죽었어도 자기들의 진압행위의 정당성만을 오로지 그 정당성만을 토로하는 그들의 모습은 '사회안전'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가 사라진 허탈한 사회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 같아 마음을 갈무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의 주장이, 그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개발의 뒷모습 아니 진면목이기 때문이다.

오월의 노래

오월은 다시 온다. 만삭의 보름달이 때가 되면 밤하늘을 다시 찾아오듯 오월은 다시 온다. 오월이 되면 죽지 않는 목숨들이 서로 사랑하는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감기지 않는 눈을 들어 멀리 하늘을 응시하는 순백의 영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하여 슬프디 슬픈 오월이 되면 우리는 오히려 각자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그들의 애정어린 속삼임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살아 있는 모습을 그들의 해맑은 두 눈을 통해 바라보게 된다. 자칫 밑도 끝도 없이 비감해질 수 있는 ‘오월의 노래’가 다 듣고 나면 얽힌 마음의 올들을 풀어 주고, 비개인 아침 하늘처럼 우리를 맑게 만들어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
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향기 머무는 날
묘비 없는 죽음에 커다란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는 목숨에 이 노래 드리오.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이렇듯 봄이 가고 꽃 피고 지도록
멀리 오월의 하늘 끝에 꽃바람 다하도록
해 기우는 분숫가에 스몄던 넋이 살아
앙천에 눈매 되뜨는 이 짙은 오월이여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이 노래는 문승현이 광주꼬뮌이 끝난 뒤 망월동에 안치된 꼬뮌전사들을 향해 부른 연가라 할 수 있다. 아니 그들의 그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살아남은 자의 답가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어느쪽이 되었건 이 노래의 배경에는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사랑이야기가 깔려 있다. 우리가 자칫 바로 그 대목만 쏙 빼놓고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십상인 바로 그 사랑이야기. 누가 누구를, 누가 무엇을 사랑했는지가 단지 가벼운 가쉽거리인 세상에서 ‘사랑을 하려면 바로 요렇게 해야 한다’는 외침이 이 노래에 담겨 있다. 봄이 가도, 꽃이 다 져도, 결국 하늘 끝에 꽃바람마저 다할지라도 아직 죽지 않는 넋으로 살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몸이 죽는다한들 하늘을 바라보는 그 눈매는 그대로 인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오월을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랑을 그리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다시 오월이 와서 봄볕이 내리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오면 우리는 결국 떠올리게 된다. 여기 죽지 않는 목숨들이 꽃으로 다시 피었노라고, 우리가 그들과 함께 마저 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노라고..


페흐 라쉐즈에는 유명인사들의 묘가 즐비하다.
음악을 한 사람으로는 프레데릭 쇼팽, 짐 모리슨, 죠르쥬 비제, 마리아 칼라스, 지오아치노 로시니, 에디뜨 피아프, 이브 몽땅 그리고 글을 쓴 작가로는 오스카 와일드, 발자크, 알퐁스 도데, 막셀 프루스트, 폴 엘뤼아르, 학자로는 끌로드 베르나르, 오귀스트 꽁트, 요셉 푸리에, 요셉 루이 게이-뤼삭, 모리스 메를로 퐁띠, 화가로는 으젠느 들라크로와, 구스타프 도레, 테오도르 제리코,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까밀 피사로, 죠르쥬-피에르 쇠라 그리고 마임을 한 막셀 막쏘나 무용을 한 이사도라 던컨 같은 예술가들도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빠리 시내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인 이곳을 거닐다 보면 이러한 위인들의 이름이 주는 무게감을 느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페흐 라쉐즈에 남다른 애착을 지니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이 곳은 이름만 들어도 그 유명도를 직감할 수 있는 세계적 위인들이 묻힌 곳이기 이전에 147명의 꼬뮈나르들이 1871년 5월 28일에 처형 아니 학살을 당한 곳이다. 이 묘지 구석진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Mur des Fédérés (꼬뮌 전사의 벽)은 그들이 학살을 당할 당시 등지고 있던 벽이다.


정확히 109년의 시간이 흘러 한국의 광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재연된 꼬뮌과 학살. 참 우연치고는 기묘한 우연이 아닐까? 파리에 살면서 페흐 라쉐즈를 두 번 방문했지만 그때까지 꼬뮌 전사들에 대한 사연을 모르고 있었던 터라 전사의 벽은 방문하질 못했다. 그러다 어느 계기를 통해 이 사실을 알고난 후 간혹 자기 전에 누워 있다 보면 습기 자욱했던 페흐 라쉐즈의 조용한 정경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환영처럼 선량한 눈매를 지닌 이국의 가난한 사람들과 고향에 두고 온 주름진 얼굴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여기 저기 모여앉아 추운 날 군불을 때는 상상을 하곤 했다. 꼬뮌의 벗들에게라는 시는 그처럼 반복되는 환영을 담은 글이다.


꼬뮌의 벗들에게

비오는 정오.
먼 길 따라 이곳까지 나를 이끈 소리들이
잠시 행군을 멎고 휴식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멀리 떠나고
이름만
바람에 낯을 씻으며 서있는
페흐 라쉐즈.
하늘은 조용히 몸을 낮춘 채
서리 낀 장막으로 세상을 감싸고 있다.
납골당
옹기종기 서성이는,이름도 얼굴도 없는 사람들.
내미는 손길마다
깊이 새겨진 그리움의 화인.
긴 겨울 내내 낡은 상자 속에
꾸깃 꾸깃 모아 두었던 햇살같은 꿈을 꺼내
빵을 떼듯 나누고 있다.
빈 배를 채우는오래된 꿈.
서로의 온기에 몸을 기댄 채
나지막이 술을 건네듯 꿈을 나눈다.
접지 못하고
높은 장대에 매단 꿈.
그 꿈은
한때 바다를 이루고,
해일처럼 오래 묵은 성곽을 깨어 부수고,
여름 한나절 세상을 휘 돌다가 
이내 노을에 붉게 물든 구름이 되었다.
그리고 긴 세월 멀리 밤을 지나와,
내가 서 있는 대지를 향해 달려드는
빗방울이 되어 마지막까지 세상을 애무하다가
잔잔히 땅 속으로 스며든다.
아름다운 꿈들이 남겨준 정적과 평화.
그대 빗물에 싸여 
벽 앞에 서면 잠시 시간이 멎고
멀리 서 있던 사람들이
반갑게 내게 다가온다.
두고 온 고향 같은 얼굴들.
얼굴 가득 미소처럼
꿈을 머금고 반갑게 내게 다가온다.
춤사위 같은 걸음들.
성큼 성큼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
어느 아침
악몽의 끝자락에서 나를 건져 올리던
어머니의 손길 같은 따스한 온기들이
와락 나를 껴안으며
내 긴 잠을 깨운다.
저 멀리 긴 행렬 어디선가 들리는 호각소리 하나.
이제 새 꿈으로 건너가는 나를 이끈다.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힘들까?
작고 여린 나무 끝
도란도란 모여 있는 
다섯 개의 연초록 잎사귀
모두 다 돌아가고
빈 가지 사이로 
찬바람만
오가는 겨울 벌판.

때를 놓친 걸까?
아니면 모두 가버린 빈자리에
홀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어떤 사연이 있는걸까?
언제나 마지막 남는 것들은
왜 다들 저렇게
연약해 보이고,늘 맨 끝에 있고,
저리 가슴 아프게도 외로운 걸까?
과연 저 잎새들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