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퍼스에 따르면 학문은 크게 네 가지 가정을 한다.
첫번째 가정은 논리법칙(Die Regeln der Logik)이다. 학문이 전개될 때 논리가 작용하는 과정에서 적용되어야 할 원칙들을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 주어진 주장에 대한 반박을 제안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무엇을 생각하거나 인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어떤 생각을 진행하고 발전시켜 모종의 주장을 하려면 이 원칙을 받아들여야 한다. 논리의 법칙은 이처럼 어떤 논리적 가정 자체를 무의미하다고 배제해버리는 것이나 반대로 그 가정을 절대적인 사실인 것처럼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것 모두와 거리가 멀다. 또한 엄밀하게 정의될 수 없는 언어로 이루어진 논리적 가정은 논리법칙을 제대로 만족시키기 어렵다. 언어가 의미의 전달체로서 기능하려면 그 안에 담긴 의미나 개념의 모호함이 정확히 인식되어야 한다. 논리법칙을 수용하고 논리적 가정을 존중하는 것은 학문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논리적 가정을 존중한다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이 서있는 하나의 세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 세계는 절대적인 세계가 아니다. 하지만 그 세계는 구체적인 세계이다. 즉 학문은 그 세계에 두 발 딛고 있는 상태에서만 작동한다. 학문의 타당성은 그 세계속에서 의미를 지닌다. 자신이 서 있는 세계 속에서 타당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학문을 절대화시킬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번째 가정은 학문의 바람직함(dass Wissenschaft sein soll)이다. 학문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에게 학문이 지닌 바람직함을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입증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의 문제이다. 앎에 대한 의지가 발생하여 나오는 원천은 외부 어딘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다. 의지의 자발성이 학문을 이끈다. 앎에 대한 열망이 학문에 대한 자기 긍정을 가능케한다. 따라서 자기 긍정으로부터 얻어지는 학문의 바람직함은 학문의 가정이이자 전제가 되는 것이다.
세번째 가정은 주제의 선택(die Wahl des Gegenstandes)과 관련된 가정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 즉 앎에 대한 의지를 쫓아 가는 사람은 무한하게 가능한 옵션 가운데 자신이 탐구할 주제를 선택할 때 탐구의 결과물인 지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지닌 의지를 통해 선택한다. 그 의지는 어떤 동기에 기반한 것일 수도 있고, 모종의 직관으로부터 연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학문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앎에 대한 의지이다.
마지막 네번째 가정은 학문이 이념체계(Schemata der Ideen)에 의해 이끌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파편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념체계의 작용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념의 유한성과 불완전성으로 말미암아 어떤 특정 이념의 이끔은 줄곧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념은 등장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학문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만일 그러한 이끔이 없다면 우리는 학문의 전체적인 얼개를 불완전하게 나마 살필 방도가 없게 된다. 전체적인 얼개를 살피면서 우리는 학문에서 무엇이 보다 핵심이고 무엇이 덜 핵심인지, 무엇이 깊이 있는 이해이고 무엇이 피상적인 것인지, 무엇이 의미심장한 것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무엇이 전체를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며 무엇이 파편적인 부분을 보여주는데 그치는지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학문을 하는 사람은 발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고, 우연적인 요소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학문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주어지는 분절된 발견과 그에 대한 해석이 일종의 맥락을 지니게 되고 그 결과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한편 학문에서 가정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야스퍼스는 그것을 도그마로 존재하는 세계관(Weltanschauung)이라 말한다. 편견없이 냉혹하게 수행되는 여러 실험과 분석 그리고 그에 따라 제기되는 다양한 반론이라는 필터를 통과해야 하는 것은 학문의 중요한 속성이다. 따라서 세계관은 엄밀한 의미에서 임시적이고 포용적이어야 한다.
이처럼 끊임없이 유동하는 것이 학문이라면 학문의 벡터 즉 방향은 아주 중요한 고려 항목이라 할 수 있다.
2019년 6월 14일 금요일
2019년 6월 4일 화요일
교육과 연구14-학문의 본질과 그 외양 사이의 격차
'학문 자체의 목적은 바로 학문이다.'라는 주장은 대체로 지지받지 못한다. 학문의 영역이 확장되고 그 내용이 심화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정보와 지식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그들이 생산되는 방식 역시 공장의 생산 라인처럼 일련의 공유된 절차들로 변화했다. 지식의 생산자인 전문가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 이외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 일쑤이며, 자신이 생산한 지식이 파급시킬 광범위한 효과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문이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는 주장은 갈수록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스퍼스는 진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보다 뿌리깊게 질문한다. 설사 인간이 진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이끄는지에 대해 모른다 할지라도 오로지 진리만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부각시켜주고, 무엇보다 사유(Denken) 속에서 우리 삶이 그것의 토대를 발견하도록 이끈다. 그런데 인간이 이러한 모색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학문이라는 게 야스퍼스의 주장이다. 학문의 본질과 그것이 이 시대에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외양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다. 이 때문에 야스퍼스는 학문의 속성에 대해 좀 더 살핀다.
그 속성 중 가장 먼저 논의 되는 것이 학문의 기본 가정들(Voraussetzungen)이다.
그 속성 중 가장 먼저 논의 되는 것이 학문의 기본 가정들(Voraussetzungen)이다.
2019년 6월 3일 월요일
교육과 연구13-학문의 궁극성과 앎에 대한 의지
야스퍼스는 학문이 지닌 결정적인 동기는 그것이 지닌 유용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기술의 적용이 지닌 한계가 분명하고, 위대한 발견들이 대부분 그것이 지닌 유용성을 염두에 두고 이뤄진게 아니라는 것이 그러한 주장을 펼치는 근거이다. 학문이 이처럼 수단이 아니라면 그 자체로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나? 이 질문에 대해 야스퍼스는 조건부 긍정을 한다. 즉 앎에 대한 의지(wissenwollen)가 가장 기본이 되면서 중요하다는 조건하에서 학문은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될 수 있다. 앎에 대한 의지는 쓸모에 대한 고려보다 우선한다. 어느 특정 교육이념을 바탕으로 지식을 살피자면 그것은 대규모 평준화 교육이 이뤄지는 사회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 되거나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의 요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은 지식의 어떤 면모이거나 일부 카테고리를 이룰 수 있을지 몰라도 지식 그 자체와 동일시될 수 없다. 지식은 어떤 이념을 수용한 상태에서 전인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의 정도에 따라 그것이 지니는 의미의 강도가 달라지게 된다. 또한 지식은 보편적인 기준(Mass)과 형태(Form)를 지녔는지 여부에 따라 의미를 지니게 된다.
앎에 대한 의지는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순간적으로 일어난 호기심만으로 유의미한 지식을 낳을 수 없다. 호기심이 의지의 형태로 변형되었을 때에서야 그 자체로 동력을 지니게 된다. 지식을 생성하고 진전시킬 수 있는 요체가 된다. 오로지 인간만이 깨달음의 결과가 가져다 줄 여파가 클지라도 깨닫기 위해 노력한다. 생물 가운데 인간만이 깨달음의 과정에 있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인간으로서 여긴다. 인간은 자신감을 주위 세계에 존재하는 실체의 정체를 간파하고, 각각의 특별한 지식이 지닌 의미를 이해하고, 가능한 원대하게 지적 체계를 구성해가는 과정을 통해서야 얻을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앎에 대한 의지'가 인간에게 일차적이고 중대한 이유이다. 이 의지를 통해 인간은 자신이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자아도취에 빠지도록 이끄는 잘못된 교육에 저항할 수 있고, 바로 이 의지를 통해 신념이 사라진 공허한 지적 상태나 더 이상 알기를 원하지 않는 마음을 극복할 수 있으며, 이 의지가 있을 때에야 주어진 '결과'에 대한 학습을 깨달음과 일치시키는 몰이해를 뛰어넘을 수 있다. '앎에 대한 의지'를 통해 인간이 만족을 얻을 때는 오로지 지식의 최전선이 탐구의 도약대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경계에 이르렀을 때이다.
앎에 대한 의지는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순간적으로 일어난 호기심만으로 유의미한 지식을 낳을 수 없다. 호기심이 의지의 형태로 변형되었을 때에서야 그 자체로 동력을 지니게 된다. 지식을 생성하고 진전시킬 수 있는 요체가 된다. 오로지 인간만이 깨달음의 결과가 가져다 줄 여파가 클지라도 깨닫기 위해 노력한다. 생물 가운데 인간만이 깨달음의 과정에 있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인간으로서 여긴다. 인간은 자신감을 주위 세계에 존재하는 실체의 정체를 간파하고, 각각의 특별한 지식이 지닌 의미를 이해하고, 가능한 원대하게 지적 체계를 구성해가는 과정을 통해서야 얻을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앎에 대한 의지'가 인간에게 일차적이고 중대한 이유이다. 이 의지를 통해 인간은 자신이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자아도취에 빠지도록 이끄는 잘못된 교육에 저항할 수 있고, 바로 이 의지를 통해 신념이 사라진 공허한 지적 상태나 더 이상 알기를 원하지 않는 마음을 극복할 수 있으며, 이 의지가 있을 때에야 주어진 '결과'에 대한 학습을 깨달음과 일치시키는 몰이해를 뛰어넘을 수 있다. '앎에 대한 의지'를 통해 인간이 만족을 얻을 때는 오로지 지식의 최전선이 탐구의 도약대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경계에 이르렀을 때이다.
2019년 5월 25일 토요일
교육과 연구 12-학문의 한계와 효용성1
"Wissenschaftliche Sacherkenntnis ist nicht Seinserkenntnis."
사물에 대한 학문적 이해는 존재에 대한 이해가 아니다. erkenntnis는 지식으로 번역되지만 이 말에는 인식과 이해의 과정이라는 의미가 모두 함축되어 있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내가 이해하는 것은 존재 그 자체가 아니다. 알아가는 것과 알게 된 결과물들은 나의 지적 인식 체계가 지닌 특수한 조건하에서 체득된 존재의 어떤 국면(Aspekte)이다." 따라서 협의의 학문이 이해한 바는 특수한 것이다. 일반적이고 총체적인 것이 아니다. 야스퍼스는 그러하기에 실체의 단일성과 총체성이라는 비전을 토대로 한 이념을 통해 동기를 획득할 때에야 앎에 대한 의지를 회복할 수 있고, 이 의지가 있을 때에야 학문의 수행이 가능해진다고 이야기한다. 학문의 한계는 그것이 곧 바로 인생이 나아가야 할 목표를 제시해주지 못한다는데 있다. 종교가 협의의 학문(우리가 보통 일컫는 과학)의 자리에서 협의의 학문이 지닌 논리로 이야기하는 순간 사이비 학문이 된다. 반면 학문이 종교의 자리에서 신앙과 존재의 본질에 대해 말하는 순간 우리는 학문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이러한 한계를 염두에 두었을 때 학문이 갖는 가치(Wert)는 무엇인가? 데카르트나 베이컨의 주장 아래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학문의 유용성이 학문이 지니는 주된 가치인가? 인간이 욕망하는 바를 보다 효과적이고 충분히 채우기 위해, 또는 인간의 노동력이 지닌 효율을 증가시키기 위해, 사회 시스템의 규모를 늘리고 그 능력을 배가시키기 위해,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아남기 위해 학문이 쓰인다. 그 쓰임새가 학문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여기에 대해 야스퍼스는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그것이 앞서도 이야기한 '앎에 대한 끝없는 의지(Wissenwollen)'이다.
사물에 대한 학문적 이해는 존재에 대한 이해가 아니다. erkenntnis는 지식으로 번역되지만 이 말에는 인식과 이해의 과정이라는 의미가 모두 함축되어 있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내가 이해하는 것은 존재 그 자체가 아니다. 알아가는 것과 알게 된 결과물들은 나의 지적 인식 체계가 지닌 특수한 조건하에서 체득된 존재의 어떤 국면(Aspekte)이다." 따라서 협의의 학문이 이해한 바는 특수한 것이다. 일반적이고 총체적인 것이 아니다. 야스퍼스는 그러하기에 실체의 단일성과 총체성이라는 비전을 토대로 한 이념을 통해 동기를 획득할 때에야 앎에 대한 의지를 회복할 수 있고, 이 의지가 있을 때에야 학문의 수행이 가능해진다고 이야기한다. 학문의 한계는 그것이 곧 바로 인생이 나아가야 할 목표를 제시해주지 못한다는데 있다. 종교가 협의의 학문(우리가 보통 일컫는 과학)의 자리에서 협의의 학문이 지닌 논리로 이야기하는 순간 사이비 학문이 된다. 반면 학문이 종교의 자리에서 신앙과 존재의 본질에 대해 말하는 순간 우리는 학문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이러한 한계를 염두에 두었을 때 학문이 갖는 가치(Wert)는 무엇인가? 데카르트나 베이컨의 주장 아래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학문의 유용성이 학문이 지니는 주된 가치인가? 인간이 욕망하는 바를 보다 효과적이고 충분히 채우기 위해, 또는 인간의 노동력이 지닌 효율을 증가시키기 위해, 사회 시스템의 규모를 늘리고 그 능력을 배가시키기 위해,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아남기 위해 학문이 쓰인다. 그 쓰임새가 학문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여기에 대해 야스퍼스는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그것이 앞서도 이야기한 '앎에 대한 끝없는 의지(Wissenwollen)'이다.
2019년 5월 20일 월요일
교육과 연구11-wissenschaft와 science
야스퍼스의 주장을 살펴보기에 앞서 한가지 언급하고 넘어갈 것이 있다. 야스퍼스의 'Die Idee der Universitat'(1946)은 우리말로 번역된 판본이 있다. 1972년에 서문당에서 독일어 원문의 영어번역본을 다시 우리글로 번역한 것이다. 처음 우리말본으로 내용을 접하면서 한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우리말본에는 '학문'과 '과학'이라는 용어가 뒤섞여 나오는데 어떤 경우에 학문이라는 용어를 쓰고, 어떤 경우에 과학이라는 용어를 쓰는지 기준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영어본을 살펴본 결과 독어원본의 wissenschaft를 모두 science로 번역해 놓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영어본을 한글로 번역할 때는 문맥에 따라 어떤 경우는 science를 학문으로 어떤 경우는 과학으로 번역하였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독일어 wissenschaft가 우리말본에서는 학문 또는 과학으로 번역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어의 wissenschaft가 영어의 science와 같은 의미인지 아닌지 궁금해졌다.
독일 사람들이 생각하는 wissenschaft의 의미를 살펴보다가 독일 연방교육연구협회(BBWF)에서 내린 다음과 같은 wissenschaft의 정의를 발견하였다.
"Wissenschaft는 연구를 통한 지식의 확장과 연구집단, 연구소, 학교 교육을 통한 전달을 통해 획득된 지식의 총체이다." https://www.bbwf.de/wissenschaft/was-ist-wissenschaft/를 보면 알 수 있듯이 wissenschaft에는 natural science, social science, medical science, agricultural science, engineering 뿐 아니라 humanities가 포괄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 '학문'이 적절할 것이다. 영어의 science는 역사적으로 근대 이후 humanities를 배제한 나머지 분야를 일컫지만, 현대에 접어들어 대부분의 용례들에서 보다 엄밀하고 좁은 의미를 띄고 있다. 즉 science는 natural science와 그것의 응용과 관련된 활동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특히 우리가 사용하는 과학이라는 용어는 그 범위가 아주 좁아 학문과 혼용되기에는 의미가 차이가 크다. 따라서 야스퍼스의 원문을 한글로 번역할 때에는 '학문'이라는 용어가 적절하다고 판단하고 이후 그렇게 표현하고자 한다.
독일 사람들이 생각하는 wissenschaft의 의미를 살펴보다가 독일 연방교육연구협회(BBWF)에서 내린 다음과 같은 wissenschaft의 정의를 발견하였다.
"Wissenschaft는 연구를 통한 지식의 확장과 연구집단, 연구소, 학교 교육을 통한 전달을 통해 획득된 지식의 총체이다." https://www.bbwf.de/wissenschaft/was-ist-wissenschaft/를 보면 알 수 있듯이 wissenschaft에는 natural science, social science, medical science, agricultural science, engineering 뿐 아니라 humanities가 포괄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 '학문'이 적절할 것이다. 영어의 science는 역사적으로 근대 이후 humanities를 배제한 나머지 분야를 일컫지만, 현대에 접어들어 대부분의 용례들에서 보다 엄밀하고 좁은 의미를 띄고 있다. 즉 science는 natural science와 그것의 응용과 관련된 활동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특히 우리가 사용하는 과학이라는 용어는 그 범위가 아주 좁아 학문과 혼용되기에는 의미가 차이가 크다. 따라서 야스퍼스의 원문을 한글로 번역할 때에는 '학문'이라는 용어가 적절하다고 판단하고 이후 그렇게 표현하고자 한다.
2019년 5월 18일 토요일
교육과 연구10-학문의 본질과 특성1
"ursprüngliche Wissenwollen"
야스퍼스의 주장을 요약하는 핵심어를 한가지 꼽으라면 위에 적은 '앎에 대한 의지'라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이 의지는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의지이다. 야스퍼스는 이 핵심어를 통해 학문의 본질과 특성, 한계 등에 대해 논한다. 그가 말한 학문의 특성은 크게 세가지이다. 첫째, 학문은 비조직적, 비체계적인 어림짐작과 대비되는 조직적, 체계적 방법(methodischen Bewußtsein)을 통해 이뤄진다. 둘째, 학문은 신념처럼 우선 받아들이고 나서 이를 바탕으로 다른 것들을 해석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 설득력(zwingendgewiß)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셋째, 학문은 누구나 입증할 수 있는 보편타당성(allgemeingültig)에 근거한다. 학문의 속성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진 노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자리잡혔다. 학문적 지식과 그렇지 않은 지식을 보다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게 되면서 학문의 의미가 보다 또렷해졌다. 그는 학문의 양상이 변모한 기점을 14세기로 본다. 보다 좁으면서 적절한(eigentlichen) 학문의 의미가 대두된 것은 지식을 보다 깊이있고 넓게 이해하게 되면서 가능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발견의 학문(entdeckende Wissenschaft)을 통해 발생하였다. 그는 바로 이를 연구(Forschung)라 칭한다. 그 이전 학문은 선명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연구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학문은 보다 엄밀하게 정의되는 좁은 영역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가 광의의 학문과 협의의 학문을 나누는 배경에는 이런 역사적 면모가 있다.
그럼 야스퍼스가 말하는 협의의 학문에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야스퍼스의 주장을 요약하는 핵심어를 한가지 꼽으라면 위에 적은 '앎에 대한 의지'라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이 의지는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의지이다. 야스퍼스는 이 핵심어를 통해 학문의 본질과 특성, 한계 등에 대해 논한다. 그가 말한 학문의 특성은 크게 세가지이다. 첫째, 학문은 비조직적, 비체계적인 어림짐작과 대비되는 조직적, 체계적 방법(methodischen Bewußtsein)을 통해 이뤄진다. 둘째, 학문은 신념처럼 우선 받아들이고 나서 이를 바탕으로 다른 것들을 해석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 설득력(zwingendgewiß)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셋째, 학문은 누구나 입증할 수 있는 보편타당성(allgemeingültig)에 근거한다. 학문의 속성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진 노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자리잡혔다. 학문적 지식과 그렇지 않은 지식을 보다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게 되면서 학문의 의미가 보다 또렷해졌다. 그는 학문의 양상이 변모한 기점을 14세기로 본다. 보다 좁으면서 적절한(eigentlichen) 학문의 의미가 대두된 것은 지식을 보다 깊이있고 넓게 이해하게 되면서 가능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발견의 학문(entdeckende Wissenschaft)을 통해 발생하였다. 그는 바로 이를 연구(Forschung)라 칭한다. 그 이전 학문은 선명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연구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학문은 보다 엄밀하게 정의되는 좁은 영역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가 광의의 학문과 협의의 학문을 나누는 배경에는 이런 역사적 면모가 있다.
그럼 야스퍼스가 말하는 협의의 학문에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2019년 5월 15일 수요일
교육과 연구9-앎에 대한 의지
"An der Universität verwirklicht sich das ursprüngliche Wissenwollen, das zunächst keinen anderen Zweck hat, als zu erfahren, was zu erkennen moglich ist und was aus uns durch Erkenntnis wird." (이탤릭 부분은 원문 표기를 따름)
칼 야스퍼스의 'Die Idee der Universität'의 서문을 보면 위 문장이 나온다. 대학이 존재하는 목적(Zweck)을 서술한 문장이다. 추상적인 언명이지만 그는 대학이 추구해야 할 목적이 가장 우선적이고 핵심이 되는(ursprüngliche) 앎에 대한 의지(Wissenwollen)를 실현하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앎에 대한 의지는 다음 두 가지 내용으로 연결된다. 무엇을 깨달아야 할지를 체득하는 것과 그 깨달음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체득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즉 앎에 대한 의지를 실현하는 것은 일련의 과정이다. 그는 또 이 의지의 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Das ursprüngliche Wissenwollen ist eins und geht auf das Ganze." (이탤릭 부분은 원문 표기를 따름)
즉 야스퍼스에 따르면 핵심이 되는 앎에 대한 의지는 단일성(총화)에 대한 추구와 전체에 대한 다가섬이다. 이 주장은 19세기 초중반에 제안된 지식의 총화, 학문의 총화와 바로 맞닿아있다. 그는 이어 단일성을 추구하고, 전체에 다가가는 과정이 여러 학문의 전문분야를 통해 이뤄진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주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기서 언급된 여러 전문 분야는 전체 학문의 구성 요소로서 다뤄질 때에야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학문의 전체적인 체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분화와 총화 사이에 꾸준한 긴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학문의 총화(die Einheit aller Wissenschaften)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지향점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이 대학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야스퍼스의 의견을 살펴보도록 하자.
칼 야스퍼스의 'Die Idee der Universität'의 서문을 보면 위 문장이 나온다. 대학이 존재하는 목적(Zweck)을 서술한 문장이다. 추상적인 언명이지만 그는 대학이 추구해야 할 목적이 가장 우선적이고 핵심이 되는(ursprüngliche) 앎에 대한 의지(Wissenwollen)를 실현하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앎에 대한 의지는 다음 두 가지 내용으로 연결된다. 무엇을 깨달아야 할지를 체득하는 것과 그 깨달음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체득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즉 앎에 대한 의지를 실현하는 것은 일련의 과정이다. 그는 또 이 의지의 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Das ursprüngliche Wissenwollen ist eins und geht auf das Ganze." (이탤릭 부분은 원문 표기를 따름)
즉 야스퍼스에 따르면 핵심이 되는 앎에 대한 의지는 단일성(총화)에 대한 추구와 전체에 대한 다가섬이다. 이 주장은 19세기 초중반에 제안된 지식의 총화, 학문의 총화와 바로 맞닿아있다. 그는 이어 단일성을 추구하고, 전체에 다가가는 과정이 여러 학문의 전문분야를 통해 이뤄진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주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기서 언급된 여러 전문 분야는 전체 학문의 구성 요소로서 다뤄질 때에야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학문의 전체적인 체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분화와 총화 사이에 꾸준한 긴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학문의 총화(die Einheit aller Wissenschaften)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지향점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이 대학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야스퍼스의 의견을 살펴보도록 하자.
2019년 5월 14일 화요일
교육과 연구8-the idea of university
19세기 중반 이후 학제가 급속하게 분화되는 과정은 각 학제의 발전이 낳은 결과이자 각 학제의 발전을 거듭 촉진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학제가 분화되는 과정은 학제와 관련된 제반 조직들의 조직화를 야기했고, 제반 조직들의 조직화는 학제의 분화를 심화시켰다. 대학내에서 철학faculty와 서로 연합되었된 rigorous science(제반 자연과학)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대학 내에서 별도의 faculty로 분화되고 더 나아가 분리된다. 이 과정은 각 학제의 체계를 보다 정교하면서도 완결적으로 만든다. 각 학제의 curriculum이 자리잡히고, 그것을 교육하는 교육 시스템이 구축된다. 각 학제의 교과서가 집필되고, 공유되고 더 나아가 공인되기에 이른다. 이를 통해 학제는 학제의 내용적 면모나 그 학제를 학습한 인력의 재생산면에서나 차츰 자기완결성을 지니게 된다. 이는 분화된 각 학제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긍정적인 면모일 수 있겠으나 동시에 문제점이 대두된다.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그의 책 'The idea of university'에서 19세기 초 중반 잠시 대두되었다가 사라진 독일 대학개혁의 핵심 철학을 다시금 강조한다.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그의 책 'The idea of university'에서 19세기 초 중반 잠시 대두되었다가 사라진 독일 대학개혁의 핵심 철학을 다시금 강조한다.
2019년 5월 9일 목요일
교육과 연구7-학제의 분화와 개혁의 쇠퇴
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과학내 학제의 분화가 본격화되었다. Rudolf Stichweh의 글 "Differentiation of scientific disciplines: Causes and Consequences"을 보면 학제의 분화를 당시 과학의 발명으로 묘사하고 있다. 과학이라는 그릇에 담긴 지식이 증가하면서 이를 소통할 시스템이 필요했는데 그 기능을 학제의 분화를 통해서 이뤘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과학의 사회적 시스템인 학회가 큰 규모로 발전하였고, 대학 교육에서 그를 뒷받침하는 교수진과 커리큘럼이 형성되고, 관련 전문 직업군이 나타난 것이다.
학제의 분화와 과학의 총화는 강력한 긴장 관계를 형성했다. 19세기 중반 이후 학제의 분화가 신속히 진행되면서 대학 양태의 변화 즉 독일 대학 개혁의 쇠퇴에 이르게 된다.
마치 3일 천하마냥 짧게 지속되다 사라진 독일 대학 개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학제의 분화와 과학의 총화는 강력한 긴장 관계를 형성했다. 19세기 중반 이후 학제의 분화가 신속히 진행되면서 대학 양태의 변화 즉 독일 대학 개혁의 쇠퇴에 이르게 된다.
마치 3일 천하마냥 짧게 지속되다 사라진 독일 대학 개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2019년 5월 7일 화요일
교육과 연구6-19세기 초반의 독일 대학 개혁
19세기 초반 독일 대학 개혁에서 나타난 unity of science 주장은 앞서 논의한 대로 우선 철학 faculty의 주도하에 철학faculty와 기타 과학faculty의 물리적 융합을 이끌었다. 또한 과학 연구가 추구하는 이상이 과학 교육의 이상과 접목되면서 교육과 연구의 융합이 이뤄졌다. 즉 세미나 및 연구실 등에서 이뤄지는 활동이 교육 활동과 접목되면서 과제 중심 교육이 수행되었고, 이러한 활동에 철학 faculty 역시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였다. 인간이 지닌 지식의 영역이 이러한 활동 중심 교육을 통해 확장되는 것을 지향하였다. 19세기 중반 이후 과학 학제들의 전문화가 본격화되기 이전에 과학의 총화 (unity of science)라는 과학 교육의 이상이 독일 전반에 퍼져나갔다. 과학의 총화를 지향했던 사례는 여러 분야 학자들을 통해 이뤄지는 세미나나, 당시 발생 초기였던 학제들간의 소통을 격려하는 여러 노력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대학의 개혁과 맞물려 대학 커리큘럼의 변화가 발생하여 기존 전통적 철학 커리큘럼이 조정되고, 제반 자연과학에 대한 교육이 도입되었다.19세기 초반 나타난 이러한 독일의 변화는 독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고, 러시아 등 해외 여러 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 네덜란드, 벨기에, 러시아의 경우 19세기 독일 대학 모델과 그 안에 담긴 철학(unity of science)을 추종하여 대학이 정립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학회 위주로 과학 연구가 이뤄진 전통 때문에 독일 대학 전통이 그대로 수용되지 못했지만 독일 대학의 우수성은 대체로 인정하는 편이었다. 영국의 경우 옥스포드, 캠브리지 대학처럼 귀족 교육을 위주로 하는 대학이 중심이었고, 또한 중앙집권식 대학정책이 아닌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대학 운영이 이뤄졌기 때문에 독일 대학 전통을 19세기 동안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국의 경우 Bas van Bommel의 주장만으론 불충분한 부분이 있다. 가령 캠브리지 대학의 경우 19세기 초반 아담 씨지윅이나 윌리엄 휴웰이 주도한 Cambridge Philosophical Society의 사례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철학과 과학의 융합 내지 과학의 철학적 이해를 추구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 수 있다. 이 부분은 휴웰의 저작들을 통해 보충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2019년 5월 6일 월요일
어윈 샤가프의 글쓰기
생화학이 발생되는 과정을 살피다가 어윈 샤가프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어느 생명체의 세포 속에서 추출한 DNA이건 간에 그 안에 있는 퓨린과 피리미딘 염기의 비율이 언제나 1:1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또한 DNA 내 Guanine의 갯수는 Cytosine의 갯수와 같고, Thymine의 갯수는 Adenine의 갯수와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두가지 발견을 묶어 샤가프의 룰이라 합니다. 사실 DNA가 두가닥의 염기사슬이 서로 짝지워져 double helix구조를 가질 것이라는 사실은 샤가프의 발견으로부터 예견되었던 부분입니다. 실제 그가 핵산과 관련해 수행한 연구의 핵심적인 결과들은 왓슨 크릭의 DNA구조 제안 이전에 논문으로 공유된 바 있었기에 DNA와 관련된 공적으로 노벨상을 받는다면 어윈 샤가프와 오스왈드 에이버리가 보다 우선 고려되었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의 자서전 격인 "Heraclitean fire"를 아껴가며 탐독했습니다. 그는 5개국어를 어려움 없이 구사하며, 당대 문학가나 철학자들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제시하고, 무엇보다 너무 아름답게 글을 썼습니다. 가령 그가 Biochemistry 연구에 몰두하게 된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I came to biochemistry through chemistry; I came to chemistry, partly by the labyrinthine routes that I have related, and partly the youthfully romantic notion that the natural sciences had something to do with nature. What I liked about chemistry was its clarity surrounded by darkness; what attracted me, slowly and hesitatingly, to biology was its darkness surrounded by the brightness of the givenness of nature, the holiness of life." (Heraclitean fire, 55p)
20대에 쟈크 프레베르의 시를 읽으며 한줄 한줄 외우고 싶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금 암송의 유혹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입니다.
그의 자서전 격인 "Heraclitean fire"를 아껴가며 탐독했습니다. 그는 5개국어를 어려움 없이 구사하며, 당대 문학가나 철학자들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제시하고, 무엇보다 너무 아름답게 글을 썼습니다. 가령 그가 Biochemistry 연구에 몰두하게 된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I came to biochemistry through chemistry; I came to chemistry, partly by the labyrinthine routes that I have related, and partly the youthfully romantic notion that the natural sciences had something to do with nature. What I liked about chemistry was its clarity surrounded by darkness; what attracted me, slowly and hesitatingly, to biology was its darkness surrounded by the brightness of the givenness of nature, the holiness of life." (Heraclitean fire, 55p)
20대에 쟈크 프레베르의 시를 읽으며 한줄 한줄 외우고 싶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금 암송의 유혹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입니다.
교육과 연구5-PhD의 연원
앞서 언급한 Wolf의 영향으로 1820년 이후 교육에서 자연과학이 지니는 의의가 급부상하였다. 당시 유명한 지질학자였고 셸링의 제자이기도 했던 Karl von Raumer는 지질학이 과학의 지위를 갖는 것은 지질 구조가 엄격한 수학적 법칙에 따르기 때문이라 주장했다 (Raumer, Über den Unterricht 1823, p. 15. ). 따라서 이전에는 경험적 관측을 토대로 구축되었던 지질학의 체계가 이제 과학적 확실성을 토대로 재구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Karl von Raumer: Über den Unterricht in der Naturkunde auf Schulen, Berlin1823, p. 15. ) Raumer는 이러한 생각을 확장하여 교육에 대한 주장을 펼친다. "지질 형성 구조가 보여주는 탄복할만치 아름다운 수학적 비율이 학생들로 하여금 놀라운 신의 지혜에 대한 경이를 갖도록 한다." (Raumer, Über den Unterricht 1823, p. 15f) 그는 학생들의 이러한 깨달음이 미에 대한 감각을 개발하도록 이끈다고 생각했다. 19세기 수학자들이나 자연과학자들 역시 Raumer 더 멀리 거슬러가자면 Wolf의 의견에 공감하여 대학 교육에서의 자연과학의 역할에 대해 강조하였다. 과학의 다양한 학제는 교육 과정에서 사물이나 현상의 배후에 담긴 실체를 보다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교육이 달성하고자 하는 진, 선, 미에 대한 이해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이러한 생각이 심화되는 가운데 철학과 기타 자연과학의 faculty가 서로 연합하는 흐름이 19세기 초중반 독일 대학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베를린 대학을 필두로 뮌헨대학, 기센, 괴팅겐, 킬, 하이델베르그 대학 등이 이러한 흐름을 주도했다. 이러한 연합의 결과 철학 박사가 순수 철학 뿐 아니라 (자연)과학 연구의 정점을 표현하는 학위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박사학위가 PhD(Doctor of Philosophy)인 이유가 여기서 연원한다.
2019년 5월 2일 목요일
교육과 연구4-고전 문헌학과 교육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Friedrich August Wolf라는 문헌학자이다. 현대 문헌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Friedrich August Wolf는 칸트의 schöne Wissenschaft비판을 고전 문헌 연구 분야에 적용시켰다. 그는 불명확하고 주관적인 취향에 의존하여 이뤄지는 고전 연구를 비판하며 고전 연구를 보다 객관적인 철학적 역사적 견지에서 진행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는 문법, 해석학, 신화학, 고전학(numismatics), 비명학(epigraphy) 등 24개의 세부 학제에 대한 연구와 이의 종합을 통해 수행되는 문헌학(philology) 연구를 제안하였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고전 연구가 고전 텍스트의 의미를 규명하는 차원을 넘어서 그것이 담고 있는 역사적, 철학적 전망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Wolf, Friedrich August: Darstellung der Alterthumwissenschaft nach Begriff, Umfang, Zweck und Wert, Berlin 1985, p. 109). Wolf의 이러한 주장은 칸트의 비판에 직면한 18세기 말 교육에도 적용되었다. 고전 속에 담긴 희소한 미적 가치는 아주 훌륭한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고전을 당시 세계의 여러 면모를 담고 있는 유기적 총체("organisches Ganze")로 간주하고,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고전 교육에 다양한 과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Wolf, Friedrich August: Darstellung der Alterthumwissenschaft nach Begriff, Umfang, Zweck und Wert, Berlin 1985, p. 5, p. 33, p. 141.). 즉 그는 고전 속에 삽화로 등장하는 여러 진, 선, 미의 사례를 개별적으로 탐구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고전이 쓰여진 당시 세계의 유기성을 다양한 과학적 탐구를 통해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서 인간의 심성이 제대로 교육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과 주장은 과학과 교육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성찰의 새로운 기준으로 작용했다. 고전 문헌학에 여러 과학적 탐구를 적용하자는 그의 주장은 19세기 초반 교육에 제반 과학 학제를 적용하여 지식의 조화를 꾀하여 총화시키고자 하는 흐름의 단초가 되었다.
2019년 4월 28일 일요일
교육과 연구3-과학에 대한 칸트주의 해석과 schöne Wissenschaft
그런데 이런 흐름에 대한 비판이 18세기 후반 제시되었다. 18세기 후반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schöne Wissenschaft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칸트는 미에 대한 과학은 없고 미에 대한 문화만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Kant, Kritik 1959, p. 157.) 그는 과학을 엄밀히 정의된 방법을 통해 얻을 수 있어서 그 결과 고도의 확실성을 지닐 수 있는 지식에 한정지웠다. 그는 진정한 과학을 논쟁의 여지가 없는 확실성을 지닌 것으로 개념지웠다 (Kant, Immanuel: Gesammelte Schriften, Berlin 1911, vol. 4: Metaphysische Anfangsgründe der Naturwissenschaft., p. 467).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schöne Wissenschaft을 주관적 취향과 관련된 지식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칸트가 18세기 후반 19세기 초반 독일 철학계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였기에 19세기 초반부터 schöne Wissenschaft는 급격한 쇠퇴를 맞이하게 된다. 칸트의 영향을 받은 철학자 Wilhelm Traugott Krug는 그의 저서 "취향(taste) 또는 미학(Geschmackslehre oder Ästhetik)"에서 과학은 미학적 즐거움을 소개하거나 만들어내는 것과는 무관하며, 오로지 진리의 발굴에 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과학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의 거대한 변화는 교육에 대한 생각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18세기말까지 독일 대학 교육은 schöne Wissenschaft에 바탕을 두고 고전 문학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에 집중하였다. 하지만 과학에 대학 철학적 성찰이 몰고 온 변화의 바람으로 말미암아 당시 교육을 이끈 사람들은 고전 교육에 보다 엄밀한 방법론을 적용하여 칸트의 과학 해석에 좀 더 부합하는 교육을 기획한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Friedrich August Wolf(1759-1824)라는 문헌학자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Friedrich August Wolf(1759-1824)라는 문헌학자이다.
교육과 연구2-schöne Wissenschaften과 교육-헤르더의 교육관
우선 훔볼트가 과학의 총화를 바탕으로 연구 중심 대학을 이끌게 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자.
19세기 초반까지 "schöne Wissenschaften" ("fine sciences")라는 제한된 범위의 과학만이 교육(Bildung)의 대상이었다. "schöne Wissenschaften" ("fine sciences")는 아름다움을 해석하고 판별하고 생활에 적용하는 과학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신학, 법학을 다루는 과학이나 수학, 물리학 등을 다루는 과학과 구분되는 제한된 영역의 과학이었다. 회화, 건축, 시, 음악, 무용 등이 "schöne Wissenschaften" ("fine sciences")과 관련된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교육에서 주로 다뤄진 schöne Wissenschaften는 문학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시학, 웅변수사학(oratory), 역사문헌학, 고전 문헌 이해에 요구되는 철학 등이 여기에 속했다. 또한 그리스 로마 고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리학, 역사학, 신화학 등 역시 교육의 영역 내에 있었다. 이들은 모두 schöne Wissenschaften이거나 이를 학습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식들이었다. schöne Wissenschaften가 교육의 대상이 되었던 주된 이유는 18세기에 활약했던 Johann Gottfried Herder에 의해 어느 정도 설명된다. 그는 "schöne Wissenschaften"에서 다루는 다양한 감각(Sensory faculties)을 통한 구체적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미에 대한 이해가 "höhere Wissenschaften"과 같이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과학의 바탕이 된다고 생각했다 (Herder, Johann Gottfried: Sämmtliche Werke, ed. by Bernhard Suphan, Berlin 1893, vol. 9: Über den Einfluss der schönen in die höheren Wissenschaften, pp. 289–306., p. 296.). 그리고 더 나아가 미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사물의 완전함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고, 이것이 학생들의 행동과 사고에 영향을 미치면 진리와 선함에 대한 이해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Herder, Johann Gottfried: Schulreden, ed. by A. Reble, Bad Heilbrunn 1962., pp. 73f). 즉 그는 미에 대한 교육을 고전적인 교육의 덕목인 진, 선, 미에 대한 교육의 출발점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 대한 비판이 18세기 후반 제시되었다.
19세기 초반까지 "schöne Wissenschaften" ("fine sciences")라는 제한된 범위의 과학만이 교육(Bildung)의 대상이었다. "schöne Wissenschaften" ("fine sciences")는 아름다움을 해석하고 판별하고 생활에 적용하는 과학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신학, 법학을 다루는 과학이나 수학, 물리학 등을 다루는 과학과 구분되는 제한된 영역의 과학이었다. 회화, 건축, 시, 음악, 무용 등이 "schöne Wissenschaften" ("fine sciences")과 관련된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교육에서 주로 다뤄진 schöne Wissenschaften는 문학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시학, 웅변수사학(oratory), 역사문헌학, 고전 문헌 이해에 요구되는 철학 등이 여기에 속했다. 또한 그리스 로마 고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리학, 역사학, 신화학 등 역시 교육의 영역 내에 있었다. 이들은 모두 schöne Wissenschaften이거나 이를 학습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식들이었다. schöne Wissenschaften가 교육의 대상이 되었던 주된 이유는 18세기에 활약했던 Johann Gottfried Herder에 의해 어느 정도 설명된다. 그는 "schöne Wissenschaften"에서 다루는 다양한 감각(Sensory faculties)을 통한 구체적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미에 대한 이해가 "höhere Wissenschaften"과 같이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과학의 바탕이 된다고 생각했다 (Herder, Johann Gottfried: Sämmtliche Werke, ed. by Bernhard Suphan, Berlin 1893, vol. 9: Über den Einfluss der schönen in die höheren Wissenschaften, pp. 289–306., p. 296.). 그리고 더 나아가 미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사물의 완전함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고, 이것이 학생들의 행동과 사고에 영향을 미치면 진리와 선함에 대한 이해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Herder, Johann Gottfried: Schulreden, ed. by A. Reble, Bad Heilbrunn 1962., pp. 73f). 즉 그는 미에 대한 교육을 고전적인 교육의 덕목인 진, 선, 미에 대한 교육의 출발점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 대한 비판이 18세기 후반 제시되었다.
2019년 4월 25일 목요일
교육과 연구 1
18세기말 19세기 초 활약했던 빌헬름 폰 훔볼트는 과학의 총화("Einheit der Wissenschaft")로 표현되는 과학관을 지녔다. Bas Van Bommel(Between "Bildung" and "Wissenschaft" the 19th-Century German Ideal of Scientific Education: Europäische Geschichte Online; http://ieg-ego.eu/en/threads/models-and-stereotypes/germanophilia-and-germanophobia/bas-van-bommel-between-bildung-and-wissenschaft-the-19th-century-german-ideal-of-scientific-education#InsertNoteID_11_marker12)은 훔볼트의 이러한 관점이 독일 대학의 사명을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훔볼트는 과학 연구를 교육이 최상의 상태로 도달하도록 이끄는 핵심적 요소라 주장했다. 훔볼트는 다음 세가지 원리에 근거해서 과학과 교육이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그는 그와 동시대의 철학자들(피히테, 셸링, 헤겔, 슐라이어마허)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식은 내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총화("Einheit der Wissenschaft")를 이룰때에서야 각 지식의 자리가 어디인지 제대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둘째, 과학의 총화는 쉼없는 과정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과정은 아직 완전히 발견되지 않은 무언가, 그리고 완전히 밝혀질 수 없는 무언가를 쉼없이 탐구하는 과정("noch nicht ganz Gefundenes und nie ganz Aufzufindendes")이라 생각했다. 이런 까닭에 과학 연구는 대학에서 이뤄지는 끊임없는 실험(academic practice)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 그는 과학 연구를 통해 인간 지식을 서로 조화롭게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인간의 지성은 그에 비례하여 조화로운 총체성을 획득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얻어진 성과를 참된 교양(wahre Bildung)이라 여겼다. 이러한 원리로부터 그는 과학의 지향점을 교육이 집중해야 할 대목 즉 가장 보편적 인간("das höchst allgemein Menschliche")의 추구로 여겼다. (Van Bommel, ibid)
보통 연구 중심대학의 기원을 거론할 때 꼭 등장하는 것이 훔볼트의 관점에 의거해 만들어진 독일 대학들이다. 그로부터 200여년이 흐른 지금 연구 중심대학에 대해 살펴보는 첫 단추로 훔볼트의 생각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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