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돌아보며 정리하는 것도 나름의 동기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경험한 일이 깨달음을 주었거나 나중 다른 일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그 일을 회상하고 정리할 수 있다. 최근 뇌리를 사로잡았던 생각이 주변 사람들에게 모종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거나, 더 나아가 사람들의 의견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알리고자 한다. 이 모든 것은 나 자신이나 주변 세상의 변화에 내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을 때 가능하다. 그 믿음은 생각을 공유하고자 하는 동기를 만들어낸다.
나에게 그러한 동기가 사라져 버렸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나나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으리란 믿음이 사라져 버렸다. 세상을 바꿔야 할 동기가 사라져 버렸다. 세상이 바뀔지도 모르겠고, 바꿔야 하는 당위성도 어디에 존재하는 건지 가물가물거릴 뿐이다. 세상은 일방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주기만 할 뿐 나의 호응에는 관심이 없다. 어떤 임계점을 넘어선건지 세상은 무감하게 자기의 길을 갈 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상황은 병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마음과 몸을 무력화시키는 깊은 우울감과 그것에 의해 조종되는 세부적인 잡상들로 뇌리가 가득차 있다. 이것이 병적인 이유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의미가 것잡을 수 없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과정에서 세상에 대응하는 것은 세상을 바꿔야 할 이유가 있거나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객관적 판단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렇게 대응하는 것이 바로 삶이기 때문에 꺽이거나 가라앉더라도 응전하는 것이다. 그것이 삶의 과정이다. 이러한 응전을 통해 개체는 마음과 몸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세상에 감응하고 대응하는 동기가 사라져 버린 것은 삶의 관점에서 볼 때 병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삶을 연장하고자 하는 것은 본능에 힘입은 바 크다. 그 본능에 기대어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남은 일이다. 의미는 고갈되어 버렸지만 세상은 나에게 비관적이지만 나를 통해 이뤄지는 상호작용이 지극히 미미하겠지만 그것들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루가 저물고 다시 새로운 하루가 나타나는 것처럼 나의 연주는 계속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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