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2일 일요일

 우리 시대나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 버린 것들. 예전에는 그냥 그렇게 우리에게 있었지만 이제 더이상 없는 것들. 그게 그다지 소중했던 건지 모르고 그냥 살고 있다가 어느날 문득 떠오르는 추억이랄 수도 있고 회한이랄 수도 있고, 또는 아쉬움이랄 수도 있는 그런 것들. Volpedo의 그림을 보다가 바로 그중의 하나가 '산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시에서 살다보면 맨땅위에서 한나절이상 아무 목적없이 시간을 보내는게 얼마나 힘드는 일인지 절감하게 된다. 가을 햇살 내리쬐는 들판 흙길을 따라 하루 한나절 아무런 이유없이 걷고 또 걸어 봤던게 언제적 일이던가? 거기에 그림에서처럼 사랑하는 연인과 간간히 담소를 나누며 혹은 손을 잡았다가, 혹은 길가 너럭바위에 걸터 앉았다가 하면서 말이다.

Passeggiata amorosa (1901-1902), olio su tela, diametro cm 100, Ascoli Piceno, Pinacoteca civica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를 읽으며 우리가 잃은게 이러한 소일거리 산책만이 아니라 그 산책을 하고자 하는 마음까지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헤세가 '크눌프'의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크눌프같은 인물들이 저를 사로 잡습니다. 그들은 '유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해롭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유용한 인물들보다는 휠씬 덜 해롭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바로 잡는 일은 나의 몫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크눌프처럼 재능있고 영감이 풍부한 사람이 그의 세계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크눌프뿐만 아니라 그 세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굳이 크눌프처럼 풍찬노숙을 하며 방랑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내 주위에는 크눌프류의 사람들이 많았다. 인적 사항란에 빠지지 않고 나오던 취미항목에 여행이나 사진찍기 또는 그림그리기를 적어 넣었던 아는 형들, 후배, 친구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예외없이 다 옛날이야기들이 되었다. 예전에는 만나면 시나 소설이야기를 나누며 개똥철학을 무럭무럭 가꾸던 시간들이 있었다. 황태자의 첫사랑을 떠올리며 언젠가 하이델베르그를 가보고 싶다고 했고,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읽고 파리에서 칼바도스를 먹는 상상에 젖어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더 우리 사회에서 그런 모습들을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상상이 그런 개똥철학이 그런 취미가, 그리고 크눌프 같은 부류의 사람이 전혀 유용하지 않다는 각성이 사회를 휩쓸고 있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모여서 조기 유학이나 재테크를 이야기하고, 영어 회화책을 읽으며 유용한 구문들과 어휘들로 뇌리를 가득 채우고, 영어를 배우거나 자격증을 따기 위해 외국을 나간다. 이제 크눌프처럼 얘기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을 넘어, 제 앞가림, 가족의 앞가림을 방해하고 축내는 해악덩어리로 지목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보이는 크눌프는 이기적이며, 지극히 비윤리적인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내가 확신하는 바 문제인 것은 크눌프가 아니라 우리의 삐뚤어진 시선이다. 헤세가 이야기했듯이 크눌프는 유용하진 않다 하더라도 사회의 유용한 인물들보다 휠씬 덜 해롭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