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9일 화요일

택시운전사를 보고....

이삿짐을 싸면서 베란다 구석에 다 문드러져 가는 박스 하나를 허물어 새로 정리하다가 예전 우표 수집을 하며 모았던 우표 앨범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2 때까지 대략 3년간 무슨 영문인지 우표 수집에 열광했었다. 오늘 앨범을 보니 79년도부터 81년도까지의 우표들이 한정판 시트와 명함판들로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개중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기념 우표는 반가운 아이템에 속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우표들은 당시 대통령들의 국가적인 행보에 맞추어 발간된 것들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외국 순방 기념, 카터대동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나란히 나온 우표, 박정희 대통령 추모 우표, 전두환 대통령 외국 순방 우표들, 특히 전두환 대통령 외국 순방우표는 종류만 8가지에 이르렀다.
80년 내가 다니던 전주 서중은 큰 길가에 있었다. 그 해 4월 내내 그 도로는 인근 전북대 학생들에 의해 점거되다시피 했다. 학교는 조기 하교를 밥먹듯 했고, 집에 가기 위해 올라탄 버스가 평소가는 길로 가지 못하고 한참을 돌아가자 나는 학생들을 향해 욕을 해댔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나라가 어려운데 저게 뭐야?" 바로 전 해인 79년 10월 27일 아침 초등학교 등교를 하며 집집마다 걸려있는 조기를 보며 마침내 울음을 터트린 애국 소년은 철없는 대학생들이 미웠다. 그런 나에게 박통과 전통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 우표를 모은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시끄럽던 4월이 가고 5월 중순 쯤 학교 앞 대로를 따라 군인들을 잔뜩 실은 트럭들이 끝도 없이 이동하였다. 그리고 조금 후 생전 처음보는 장갑차가 굉음을 내며 그 도로를 따라 지나갔다. 그날도 조기 하교를 했고, 저녁 뉴스에는 폭도와 간첩들이 날 뛰는 광주 이야기가 나왔다. 아까 그 군인들이 안 다치고 잘 진압해주기를 진심어린 마음으로 기도하며 잠에 들었다. 
87년 대학을 들어가기 전까지 나라의 일은 국부의 일이었다. 집과 학교에서 아버지와 선생님을 존경하듯 나라의 큰 어른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따귀를 때린 선생님조차 미워해본 적이 없던 나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범생이 되는 것을 숙명을 넘어 내 일생의 사명이라 여기며 10대를 보냈다. 전쟁 통에 혼자 되는 악몽을 20대 초반 언저리까지 꾸었던 나는 국가의 보호 아래서야 겨우 살아갈 수 있다는 내재된 철칙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입학한 대학에서 87년 두 차례의 수업거부와 한 차례의 시험 거부로 시작된 대학생활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갑자기 가족으로부터 이탈하여 혼자가 되면서 생활의 규모도 가늠하지 못하고 급속하게 빠져들어가던 극빈의 생활과 더불어 주변을 에워싼 채 날 것으로 내 경계를 투과해 스며들던 온갖 선동과 호소는 이중의 자기 부정을 강제하고 있었다.
87년 5월 어느 봄날 학생회관 근처에 게시된 여러 장의 흑백사진들은 차분한 관람을 허락하지 않았다. 얼굴의 상당부분이 사라진 어느 젊은이의 머리를 보며 80년 5월 내가 응원하던 군인들을 이 사진의 가해자와 연결시킬 재간이 나에겐 없었다. 두 개의 다른 세계가 있고 그 사이는 아직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방황이라기 보단 낮선 세계에 대한 부적응이었다. 두 세계는 서로를 심리적으로뿐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배제하고 있었다. 물과 기름처럼 내가 서 있던 계면은 밀도 차이로 결국 자신의 세계를 향해 움직이는 작은 알갱이들로 분주했다. 사실은 물이면서 기름처럼 굴었던 이유는 학교라는 울타리로 나와 친구들을 에워싸 기름 속에 가두었던 집단주의와 국가주의라는 기름막 때문이었을텐데 그게 사라지면서 나는 내 본연의 밀도를 유지한 채 물을 향해 아주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택시운전사를 보며 기름막을 다시 떠올렸다. 국가의 보호 아래 사우디에서 돈을 벌어 온 주인공은 그 안에서 열심히 사는 것 말고 다른 길을 모른다. 큰 돈을 벌 기회를 쫒아 광주에 내려갔을 뿐이기에 광주의 위태로움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국가의 상상못할 폭력 앞에 놓인 평범한 사람들과 언론 본연의 사명에 목숨을 거는 외국인의 눈빛은 송곳이 되어 국가라는 기름막을 찢어 놓았다.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라는 말에 울컥했던 것은 손님을 실어나르는 동일한 행위가 이뤄지고 있지만 어느새 그가 놓인 세상은 영 다른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서로 다른 두 세계 사이에서 배회하던 나의 모습이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먼 과거로부터 공감이 밀려왔다.
영화가 끝나고 감동은 천천히 감쇄해가고 있지만 영화가 던진 질문은 근성 있는 짐승처럼 똬리를 틀고 마음 어느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떤 세계에 속해 있는가?',
'지금 나를 세포처럼 둘러싸고 있는 막이 있는가?',
'지금 나는 더 이상 어디로 이동할 필요가 없는가?'
쉬 사라지지 않을 질문들이 내 안에서 숨을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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