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3일 목요일

생명의 즉흥성

바비 맥페린의 즉흥공연을 보다보면 음악의 본질을 생각하게 된다. 음악을 본질에 기대어 생각하다 보면 '움직임'이 생명에서 차지하는 의미로까지 생각이 이르게 된다. 바비는 20대 어느날 재즈 바에서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음악을 듣고 자신이 변화했다고 얘기한다. 재미있게도 그 당시 자신은 molecular level에서 변화했다고 술회한다. 그에게 즉흥음악은 '움직임'이라 한다. 일단 입을 벌리고 그 다음은 모두 그 움직임에 맡기는 것이라 한다. 그의 즉흥공연 여럿이 감명깊지만 그 중 아래 링크한 죠이와의 공연은 다소 남다르다. 다른이와의 동기화, 협력이 작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자연스럽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보여주는 공연이다. 둘 중 누구도 다른 이를 지배하거나 조종하지 않는다. 맞추고자 노력하지만 그러는 중에 자신의 흥이 북돋아진다. 서로 다른 스타일과 음색이지만 같이 곁에 있는게 다른이의 흥을 돋는다. 우정이나 사랑이 비슷한 것 같다. 맞출려고 따라가고 정의되다보면 즉흥성은 곧장 깨져버린다. 다른 스타일로 추임을 넣거나 어느 틈엔가 자신의 흥을 리듬으로 표현하면서 그럭저럭 음의 흐름이 이어지는데 그럴수록 마음에 와닿고 자연스럽다. 자연 속 다양한 종들이 서로 같이 살아가는 방식 역시 사실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 아닐까 한다. 목적과 작위는 해석의 영역이다. 그래서 날 것 같지만 그럴수록 마음에 와닿는다. 생명의 운영원리가 이와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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