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5일 토요일

교육과 연구 12-학문의 한계와 효용성1

"Wissenschaftliche Sacherkenntnis ist nicht Seinserkenntnis."
사물에 대한 학문적 이해는 존재에 대한 이해가 아니다. erkenntnis는 지식으로 번역되지만 이 말에는 인식과 이해의 과정이라는 의미가 모두 함축되어 있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내가 이해하는 것은 존재 그 자체가 아니다. 알아가는 것과 알게 된 결과물들은 나의 지적 인식 체계가 지닌 특수한 조건하에서 체득된 존재의 어떤 국면(Aspekte)이다." 따라서 협의의 학문이 이해한 바는 특수한 것이다. 일반적이고 총체적인 것이 아니다. 야스퍼스는 그러하기에 실체의 단일성과 총체성이라는 비전을 토대로 한 이념을 통해 동기를 획득할 때에야 앎에 대한 의지를 회복할 수 있고, 이 의지가 있을 때에야 학문의 수행이 가능해진다고 이야기한다. 학문의 한계는 그것이 곧 바로 인생이 나아가야 할 목표를 제시해주지 못한다는데 있다. 종교가 협의의 학문(우리가 보통 일컫는 과학)의 자리에서 협의의 학문이 지닌 논리로 이야기하는 순간 사이비 학문이 된다. 반면 학문이 종교의 자리에서 신앙과 존재의 본질에 대해 말하는 순간 우리는 학문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이러한 한계를 염두에 두었을 때 학문이 갖는 가치(Wert)는 무엇인가? 데카르트나 베이컨의 주장 아래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학문의 유용성이 학문이 지니는 주된 가치인가? 인간이 욕망하는 바를 보다 효과적이고 충분히 채우기 위해, 또는 인간의 노동력이 지닌 효율을 증가시키기 위해, 사회 시스템의 규모를 늘리고 그 능력을 배가시키기 위해,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아남기 위해 학문이 쓰인다. 그 쓰임새가 학문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여기에 대해 야스퍼스는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그것이 앞서도 이야기한 '앎에 대한 끝없는 의지(Wissenwolle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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