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7일 화요일

교육과 연구6-19세기 초반의 독일 대학 개혁

19세기 초반 독일 대학 개혁에서 나타난 unity of science 주장은 앞서 논의한 대로 우선 철학 faculty의 주도하에 철학faculty와 기타 과학faculty의 물리적 융합을 이끌었다. 또한 과학 연구가 추구하는 이상이 과학 교육의 이상과 접목되면서 교육과 연구의 융합이 이뤄졌다. 즉 세미나 및 연구실 등에서 이뤄지는 활동이 교육 활동과 접목되면서 과제 중심 교육이 수행되었고, 이러한 활동에 철학 faculty 역시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였다. 인간이 지닌 지식의 영역이 이러한 활동 중심 교육을 통해 확장되는 것을 지향하였다. 19세기 중반 이후 과학 학제들의 전문화가 본격화되기 이전에 과학의 총화 (unity of science)라는 과학 교육의 이상이 독일 전반에 퍼져나갔다. 과학의 총화를 지향했던 사례는 여러 분야 학자들을 통해 이뤄지는 세미나나, 당시 발생 초기였던 학제들간의 소통을 격려하는 여러 노력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대학의 개혁과 맞물려 대학 커리큘럼의 변화가 발생하여 기존 전통적 철학 커리큘럼이 조정되고, 제반 자연과학에 대한 교육이 도입되었다.19세기 초반 나타난 이러한 독일의 변화는 독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고, 러시아 등 해외 여러 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 네덜란드, 벨기에, 러시아의 경우 19세기 독일 대학 모델과 그 안에 담긴 철학(unity of science)을 추종하여 대학이 정립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학회 위주로 과학 연구가 이뤄진 전통 때문에 독일 대학 전통이 그대로 수용되지 못했지만 독일 대학의 우수성은 대체로 인정하는 편이었다. 영국의 경우 옥스포드, 캠브리지 대학처럼 귀족 교육을 위주로 하는 대학이 중심이었고, 또한 중앙집권식 대학정책이 아닌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대학 운영이 이뤄졌기 때문에 독일 대학 전통을 19세기 동안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국의 경우 Bas van Bommel의 주장만으론 불충분한 부분이 있다. 가령 캠브리지 대학의 경우 19세기 초반 아담 씨지윅이나 윌리엄 휴웰이 주도한 Cambridge Philosophical Society의 사례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철학과 과학의 융합 내지 과학의 철학적 이해를 추구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 수 있다. 이 부분은 휴웰의 저작들을 통해 보충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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