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우리에겐 누구에게나 소리가 있다. 그것은 대개 자신을 표현하거나 소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자신을 표현하거나 누군가와 소통할 때 우리는 우리가 대상으로 하고 있는 존재가 어떤 거리에 있는지 염두에 두고 소리의 고저와 장단을 조절한다. 그런데 그 대상이 우리가 실존이라 부르는 경계를 넘어서 있다면, 우리의 소리는 다분히 물적이라기보다 영적인 무엇이 된다. 혼신을 다하여 닿지 않을 그 어딘가를 향해, 내 실존의 끈이 끊어질 정도로 내어지르는 소리는 의도된 소리가 아니다. 계산된 소리가 아니다. 당연히 어떤 거리를 염두에 두고 내는 소리가 아닌 까닭이다. 소리를 지르는 내 존재 자체가 어떤 경계에 이르게 된다. 닿지 않을 곳을 향해 나아가는 소리는 마치 뜨거운 광염에 말라붙는 샘물을 닮아 있다. 소리를 지르다 목이 쇠고, 그래도 지르다 목청이 갈라지고 피를 쏟고, 그러다 온통 의식이 혼미해지고 다시 깨어나 울부짖다가 존재는 돌처럼 굳어져 간다. 소월의 초혼을 읽다 보면 그 소리가 들린다. 사람의 몸에서 혼을 빼나가는 소리. 실존의 경계를 타고 흐르는 소리. 그 소리를 잘 듣다 보면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보인다. 떨어져 나간 산 위에 서있는 우리, 사막 같은 세상 가운데 티끌만치 작은 존재가 되어 누군가를 애틋하게 부르고 있는 우리. 그 초라하고 작디작은 우리 실존의 모습을 얼핏이나마 보게 된다.
사진출처: 통일맞이늦봄문익환목사기념사업회
1987년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서 문익환 목사님이 외치던 소리가 있었다. 26명 열사의 이름을 온 몸을 다 던져 호명하던 그 소리는 ‘초혼’의 소리를 너무나도 빼닮았다. 그 소리에는 잠시 우리가 우리를 떠나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도록 이끄는 힘이 있었다. 그의 호명은 더 나아가 그 자리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닌 실존의 경계를 허물고, 그 너머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존재들과 서로 어울리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 기적같은 힘의 비밀은 무엇인가? 그것은 순수하고 온전한 사랑이다. 열사들을 향한 애끊는 사랑. 열사들이 사랑했던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향한 일편단심 사랑. 그 사랑이 순전할수록, 변함이 없을수록, 끊임이 없을수록, 소리는 일체의 계산을 버리고 관념과 의도가 강요하는 지향점을 버리고 우리 존재의 경계를 흩트리고 그 너머까지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이 사라지고 존재들은 편협하고 왜곡된 저마다의 경계 속에서 그저 웅얼거리기나 할 따름인 오늘날 목사님의 그 활화산 같은 소리가 참으로 그립다. 편협한 존재들의 경계를 꿰뚫고 파열시킬 초혼의 소리. 바로 이것이 우리가 우리로부터 또는 우리의 동무들로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는 소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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