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0일 토요일

오월의 노래

오월은 다시 온다. 만삭의 보름달이 때가 되면 밤하늘을 다시 찾아오듯 오월은 다시 온다. 오월이 되면 죽지 않는 목숨들이 서로 사랑하는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감기지 않는 눈을 들어 멀리 하늘을 응시하는 순백의 영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하여 슬프디 슬픈 오월이 되면 우리는 오히려 각자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그들의 애정어린 속삼임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살아 있는 모습을 그들의 해맑은 두 눈을 통해 바라보게 된다. 자칫 밑도 끝도 없이 비감해질 수 있는 ‘오월의 노래’가 다 듣고 나면 얽힌 마음의 올들을 풀어 주고, 비개인 아침 하늘처럼 우리를 맑게 만들어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
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향기 머무는 날
묘비 없는 죽음에 커다란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는 목숨에 이 노래 드리오.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이렇듯 봄이 가고 꽃 피고 지도록
멀리 오월의 하늘 끝에 꽃바람 다하도록
해 기우는 분숫가에 스몄던 넋이 살아
앙천에 눈매 되뜨는 이 짙은 오월이여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이 노래는 문승현이 광주꼬뮌이 끝난 뒤 망월동에 안치된 꼬뮌전사들을 향해 부른 연가라 할 수 있다. 아니 그들의 그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살아남은 자의 답가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어느쪽이 되었건 이 노래의 배경에는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사랑이야기가 깔려 있다. 우리가 자칫 바로 그 대목만 쏙 빼놓고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십상인 바로 그 사랑이야기. 누가 누구를, 누가 무엇을 사랑했는지가 단지 가벼운 가쉽거리인 세상에서 ‘사랑을 하려면 바로 요렇게 해야 한다’는 외침이 이 노래에 담겨 있다. 봄이 가도, 꽃이 다 져도, 결국 하늘 끝에 꽃바람마저 다할지라도 아직 죽지 않는 넋으로 살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몸이 죽는다한들 하늘을 바라보는 그 눈매는 그대로 인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오월을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랑을 그리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다시 오월이 와서 봄볕이 내리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오면 우리는 결국 떠올리게 된다. 여기 죽지 않는 목숨들이 꽃으로 다시 피었노라고, 우리가 그들과 함께 마저 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노라고..


페흐 라쉐즈에는 유명인사들의 묘가 즐비하다.
음악을 한 사람으로는 프레데릭 쇼팽, 짐 모리슨, 죠르쥬 비제, 마리아 칼라스, 지오아치노 로시니, 에디뜨 피아프, 이브 몽땅 그리고 글을 쓴 작가로는 오스카 와일드, 발자크, 알퐁스 도데, 막셀 프루스트, 폴 엘뤼아르, 학자로는 끌로드 베르나르, 오귀스트 꽁트, 요셉 푸리에, 요셉 루이 게이-뤼삭, 모리스 메를로 퐁띠, 화가로는 으젠느 들라크로와, 구스타프 도레, 테오도르 제리코,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까밀 피사로, 죠르쥬-피에르 쇠라 그리고 마임을 한 막셀 막쏘나 무용을 한 이사도라 던컨 같은 예술가들도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빠리 시내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인 이곳을 거닐다 보면 이러한 위인들의 이름이 주는 무게감을 느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페흐 라쉐즈에 남다른 애착을 지니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이 곳은 이름만 들어도 그 유명도를 직감할 수 있는 세계적 위인들이 묻힌 곳이기 이전에 147명의 꼬뮈나르들이 1871년 5월 28일에 처형 아니 학살을 당한 곳이다. 이 묘지 구석진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Mur des Fédérés (꼬뮌 전사의 벽)은 그들이 학살을 당할 당시 등지고 있던 벽이다.


정확히 109년의 시간이 흘러 한국의 광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재연된 꼬뮌과 학살. 참 우연치고는 기묘한 우연이 아닐까? 파리에 살면서 페흐 라쉐즈를 두 번 방문했지만 그때까지 꼬뮌 전사들에 대한 사연을 모르고 있었던 터라 전사의 벽은 방문하질 못했다. 그러다 어느 계기를 통해 이 사실을 알고난 후 간혹 자기 전에 누워 있다 보면 습기 자욱했던 페흐 라쉐즈의 조용한 정경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환영처럼 선량한 눈매를 지닌 이국의 가난한 사람들과 고향에 두고 온 주름진 얼굴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여기 저기 모여앉아 추운 날 군불을 때는 상상을 하곤 했다. 꼬뮌의 벗들에게라는 시는 그처럼 반복되는 환영을 담은 글이다.


꼬뮌의 벗들에게

비오는 정오.
먼 길 따라 이곳까지 나를 이끈 소리들이
잠시 행군을 멎고 휴식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멀리 떠나고
이름만
바람에 낯을 씻으며 서있는
페흐 라쉐즈.
하늘은 조용히 몸을 낮춘 채
서리 낀 장막으로 세상을 감싸고 있다.
납골당
옹기종기 서성이는,이름도 얼굴도 없는 사람들.
내미는 손길마다
깊이 새겨진 그리움의 화인.
긴 겨울 내내 낡은 상자 속에
꾸깃 꾸깃 모아 두었던 햇살같은 꿈을 꺼내
빵을 떼듯 나누고 있다.
빈 배를 채우는오래된 꿈.
서로의 온기에 몸을 기댄 채
나지막이 술을 건네듯 꿈을 나눈다.
접지 못하고
높은 장대에 매단 꿈.
그 꿈은
한때 바다를 이루고,
해일처럼 오래 묵은 성곽을 깨어 부수고,
여름 한나절 세상을 휘 돌다가 
이내 노을에 붉게 물든 구름이 되었다.
그리고 긴 세월 멀리 밤을 지나와,
내가 서 있는 대지를 향해 달려드는
빗방울이 되어 마지막까지 세상을 애무하다가
잔잔히 땅 속으로 스며든다.
아름다운 꿈들이 남겨준 정적과 평화.
그대 빗물에 싸여 
벽 앞에 서면 잠시 시간이 멎고
멀리 서 있던 사람들이
반갑게 내게 다가온다.
두고 온 고향 같은 얼굴들.
얼굴 가득 미소처럼
꿈을 머금고 반갑게 내게 다가온다.
춤사위 같은 걸음들.
성큼 성큼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
어느 아침
악몽의 끝자락에서 나를 건져 올리던
어머니의 손길 같은 따스한 온기들이
와락 나를 껴안으며
내 긴 잠을 깨운다.
저 멀리 긴 행렬 어디선가 들리는 호각소리 하나.
이제 새 꿈으로 건너가는 나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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