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0일 토요일

거기 없는 것들. 거기 있는 것들

거기에는 지는 잎새도 없고
나무도 없고
흙도 없고
구름도 없고
하늘도 없으니
가을이 와도
낙엽 하나 날리지 않고
새 한 마리 찾아오지 않는다.
거기에는 여기 저기서 긁어모아진 기름덩이들이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컨테이너에 담겨 있다가
타르처럼 길을 메우고 민들레와 지렁이와 개미들의 숨통을 메우고
오늘을 메우고 내일로 열린 문을 메운다.
거기에는 쓸모없이 날아오르는 새의 날갯짓도 없고
아장거리는 꿈들이 서 있을 대지도 없고
아기들의 잠꼬대도 없고
노인들의 이야기도 없고
바람을 타고 번지던 달콤한 숨결들마저 없으니
봄이 와도꽃 하나 피지 않고
꽃그늘로 모이던 연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거기에는 끝을 벼린 막대들만 우글우글
가장 높은 곳 예리한 막대 끝에는
버캐처럼 마른 핏덩이들만 숨을 쉬고 있다.
거기에는 밤이 와도 아침이 와도
다시 밤이 와도 변하지 않는 풍경.
변하지 않는 표정과 변하지 않는 마음들뿐.
시간이 되도 돌아갈 곳이 없는 영혼들로 붐비는 거기에는
돌아 올 아들을 마중 나온 어머니들만
먼 비탈에 서 있다.


거기란 생명이 소중하지 않은 곳이다. 다 있는 것 같아도 생명이 소중하지 않다면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다. 천하를 다 얻은 것 같아도 그 댓가가 생명이라면 그것은 개꿈보다 못한 현실일 뿐이다. 용산참사를 보며 가장 놀란 것은 과격 시위 때문도 과격 진압 때문도 아니었다. 우리 사회뿐 아니라 어디에서나 그런 일은 존재하고 또 진행되고 있다. 내가 놀란 것은 용산 구청장이나 용산 경찰서장이나 서울 경찰청장이나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법집행과 진압의 선봉에 섰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위의 결과로 인해(그것이 직접적이었건 간접적이었건 간에)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충격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살다보면 개발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면 반대 투쟁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 사람 살아가는 세상에서 무엇이 완전히 옳은 이유를 지니고 이뤄진단 말인가? 그러하기에 충돌도 분쟁도 투쟁도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 모든 것의 기본은 사람이 살기 위해서라는 사실이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 법이 만들어졌고, 사람이 살기 위해서 법 집행도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이 기본 전제가 사라진 사회를 볼 수 있었다. 사람이 죽었어도 떼를 쓴 패거리들이 사회 안녕을 해친 모습을 성토하고, 사람이 죽었어도 자기들의 진압행위의 정당성만을 오로지 그 정당성만을 토로하는 그들의 모습은 '사회안전'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가 사라진 허탈한 사회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 같아 마음을 갈무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의 주장이, 그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개발의 뒷모습 아니 진면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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