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0일 토요일

나의 시

아직 익지 않은, 아니 영원히 익지 않을 나의 자의식을 담아 낙서처럼 메모하고 정리하던 글귀들. 뭔가 들킨 것처럼, 아니 뭐라도 들킬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부끄럽고 두려운 듯 황급히 정리하고 추렴하고 매듭짓던 단어, 엇귀, 문장들. 간략하게 아주 간략하게 정리하다 보면 참으로 앙상해져만 가던 내 안의 모습들. 그렇게 더 털어낼 것도 없이 텅빈 내 안에서 자꾸 조급하게 새롭고 또 의미있는 무언가를 찾아 헤메던 많은 밤들. 나의 시는 나를 닮아 앞뒤가 맞지 않고, 자꾸 쓸데없는 멋을 내려 애를 쓰고, 더덕 더덕 붙어 있는 옛이야기들의 흔적을 미련이 남아 자꾸 잘라내지 못하고, 적당한 시간동안 적절한 방식으로 어느 한 곳에 촛점을 맞추지도 못하고, 늘 제대로 흐느끼지도 못하고 똑바른 발음으로 무얼 말하지도 못하고 들릴듯 말듯 중얼 중얼대기만 하였다. 

이러한 반성들에 사로잡혀 이제 시를 쓰지 말아야지 했다. 시라고 썼던 글들이 자꾸 부끄러워지고, 참담해져갈수록 마음이 아프고 허탈해졌다. 그럴수록 마음을 다잡아 이제 더는 시를 쓰지 말아야지 했다. 그저 겉멋일뿐이라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럴 시간에 뭔가 좀 더 생산적이고 바람직한 일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불행하게도 어느 음치가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 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것인가? 대놓고 많은 대중 앞에서 음정도 박자도 엉망인 노래를 부르기를 고집한다면 모를까 아니고서야 누구에게나 노래부를 자유가 있는 것 아닌가? 나에겐 호흡과도 같다. 시를 쓴다는 것은 엉망이 되어 버린 소반위를 그래도 틈나면 치우고 정리하는 습관처럼 자꾸만 어지럽혀지는 내 마음을 차분히 갈무리하는 나름의 삶에 대한 정성이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어두움 속에서 적막속에서 점점 잃어버릴 것만 같은 시각과 청각을 되살리기 위하여 끊임없이 민감해지기 위해 애쓰는 나름의 삶에 대한 방책이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십오년전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가던 열차표 한장을 아직도 어느 책갈피 속에 보관하듯 이젠 이윽고 금방 잊어 버릴 것 만 같은, 허무하게 분쇄되어 바람에 날라가버릴 것만 같은 이런 저런 이야기들, 자꾸 버석버석 말라만 가는 이야기들을 잠시라도 더 오래 보관하고 기억하고픈 나름의 삶에 대한 예의였다. 

나는 음치도 열창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나에게도 어떤 음치 동무가 부른 노래에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리 바랄 따름이다. 앞뒤도 안맞고, 호흡도 들쭉 날쭉이고, 촛점도 맞았다 안 맞았다 하기 쉽상인 내 노래, 음정 박자 무시하고 부르는 내 노래도 언젠가 거기 담은 사연과 이야기들에 누군가 공감하고 같이 기뻐하거나 슬퍼할 수 있기를 그런 날이 허락되기를 바라고 기원할 따름이다. 하지만 결국 그런 날이 허락되지 않는다해도 이젠 동요하지 않으리라. 뒷동산에 올라 부르는 내노래를 적어도 나는 들을테니... 못나고 기본도 갖추지 못한 그 노랫자락이라도 내 마음은 그 위에 올라탄 채 꿈처럼 허공을 날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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