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우리는 관계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두가지 키워드에 주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자간의 관계와 시간. 이 두가지 키워드에 주목하는 순간 모든게 바뀐다.
환원주의는 존재론적인 이유에서 또는 방법론적인 이유에서 관계의 기본 단위에 집중하고자 하는 경향이다. 일원론이나 이원론처럼 사물의 궁극적인 단위는 어느 하나 또는 둘의 기본적인 요소라는 생각이 존재론적인 환원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요소에 의해 사물의 본성이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사물의 가장 미시적인 관계를 분석하고 이를 종합하다 보면 복잡한 사물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방법론적 환원주의라 할 수 있다. 이는 데카르트 이후 크게 부각된 기계론의 아이디어와 서로 연결되어 근대 이후 과학을 이루는 기본적인 토양이 되어 있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여러 신체적 활동이 기계와 같은 작동 원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연소실에서 이뤄진 기체의 팽창은 크랭크 축 A를 움직이고 그 끝에 달린 톱니바퀴를 돌린다. 이 회전은 여기에 연결된 다른 톱니바퀴를 돌리고 이를 통해 또 다른 크랭크 축이 전진 후퇴 운동을 하면서 자동차 바퀴를 회전시킨다. 자동차 본넷 아래처럼 작은 계(system)에서의 상호작용은 비교적 관측가능하다. 상호작용을 이루는 부품의 수효는 기껏해봐야 100을 넘지 않는 작은 수이다.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그 결과로 빗어지는 현상은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시간을 들이면 기술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처음 설계되어 만들어질 때 각 부품 재료의 속성, 부품의 크기, 부품의 작동 범위, 부품간 상호작용 방식 등이 제법 정확하게 정의된 채 만들어지고 조립되었다. 물론 이러한 애초의 기획에서 벗어나는 경우들이 있지만 이들은 일종의 에러로 간주되어 제작과정에서 걸러질 것이고, 출시되었다 해도 사용 과정에서 다시 걸러질 것이다. 즉 이들은 태생부터 걸러짐의 기준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설계와 그에 담긴 기준은 당연하게도 기계나 장치의 사용목적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즉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다 보니 그에 적합한 기준들이 자연스럽게 산출되어진다. 이처럼 기계나 장치는 제작자의 의도 즉 목적에 맞추어 설계되고 제작되며 사용되어진다. 기계의 합목적성은 이렇게 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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